경제·금융

[서울경제 43주년] (강한 증시 강한 경제) 5.증권산업 업그레이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2002년 12월27일. 박노훈 건설증권 사장은 대주주인 손홍원 회장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증권부문을 청산하라는 통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누적되는 적자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다음날. 박 사장은 증권업 허가를 자진반납하기 위해 금감원을 찾았다. 외환위기 이후 동서증권, 고려증권 등이 부도로 폐업을 한 사례는 있어도 회사측이 면허를 자진 반납한 것은 처음이었다. 다시 이틀후. 박 사장은 직원고별사를 통해 “주식위탁업무만으로 더 이상 회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무리다. 주주와 임직원 여러분들에게 책임을 통감한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건설증권의 자진 청산은 국내 증권사들의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 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수수료가 싼 온라인 매매가 늘고 있어, 주식매매 중개수수료가 중심인 수익구조로는 경쟁을 이겨낼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최희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 75년 미국 증권산업의 경우 수수료 인하 후 10대 증권사 중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만이 살아 남았다”며 “증권업의 디지털화는 증권사의 주력업무를 저위험의 중개 업무에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M&A(인수합병)ㆍ유가증권 발행ㆍ자산관리 업무 등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는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삼성ㆍLG투자증권 등이 웰스매니지먼트(Wealth Management)를 미래 수익원으로 영업전략을 재편했고,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는 특화된 업무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뛰는 은행, 기는 증권=최근 증권업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증권업계 몫으로 되어 있던 금융통화위원 추천권(1명)을 한국은행에 뺏긴데다, 증권산업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자산운용업법이 증권사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국회소위를 통과하는 등 은행ㆍ보험 등에 비해 소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윤종화 증권업협회 부회장은 “섭섭하긴 하지만 진행중인 현안이 워낙 많아 이렇다 저렇다 말할 처지가 아니다”며 불편한 심기를 애써 감췄다. 은행권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업무영역 파괴도 증권업계로서는 괴롭다. 윤 부회장은 “IMF(외환위기)이후 은행들이 빠르게 정상을 되찾은 것은 업무영역의 확장이있었기 때문”이라며 “반면 증권업은 한정된 업무영역으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은행들은 8월부터 방카슈랑스(은행ㆍ보험 겸업)가 본격 시행되며 자산관리를 담당해온 기존의 `프라이빗뱅킹(PB)`부문의 재정비에 나서고 있는 반면 증권사들은 본격적인 자산관리 서비스인 일임형 랩어카운트를 도입키로 했지만, 주식주문 방법을 놓고 투신사와의 의견 차이로 시행 시기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여기다 IMF 이후 공기업의 해외주식예탁증서(DR) 발행 등 대형 IB업무의 90% 이상을 외국계증권사가 차지하는 등 외국계증권사의 IB(투자은행)시장 잠식이 국내 증권사의 `목줄`을 더욱 조이고 있다. ◇증권산업의 `숨통`을 열어줘라=IMF이후 증권산업이 `투명성`에 중점을 뒀다면, 이제는 증시로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주식시장은 투자자들의 안정적인 투자도 어렵지만,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우영호 증권연구원 부원장은 “증권사들이 대우채 사태와 SK파문 등과 같은 위기 때 적절하게 대응을 하지 못해 투자자들이 증시를 떠났다”며 “다양한 상품개발과 판매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은행중심의 `관치금융`시스템에서 벗어나 증권사들에게 창조적 상품개발과 판매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충식 SK증권 상무는 “쏟아지는 규제가 증권사들을 주식매매중개에만 치중하는 절름발이로 만들고 있다”며 “기업금융(IB)업무 등에 대한 규제 해소가 안정적인 증권산업을 만들고 투자자들을 증시로 유인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투신사와 씨름하고 있는 일임형랩어카운트(Wrap Accountㆍ종합자산관리계좌) 의 `포괄주문`허용도 빨리 정리돼야 한다. 포괄주문은 고객이 맡긴 돈을 증권사 FP(파이낸셜플래너)가 계좌별로 주문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주문을 내는 것으로 증권사 입장에서는 자산운용업무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투신사는 펀드와 다를게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정작 정책 당국인 재경부는 증권사와 투신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입장이다. 증권사 구조조정도 이제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야 한다. 마크 샤피로 매킨지 컨설팅 이사는 “현재 한국증권사의 구조조정은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이라며 “증권사의 미래는 몸집을 키워 선두업체가 되거나 특정업무에 집중하는 전문화하는 두가지 길뿐”이라고 말했다. 김대송 대신증권 사장은 “현재 증권산업은 증권사의 난립이 가장 큰 문제”라며 “증권사 구조조정의 가시적인 결과를 위해 투자은행에 대한 과감한 인센티브와 M&A를 위한 세제혜택 등 정부의 간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고]오호수 증권업협회 회장 기고 증권사업 도약 풀어야할 과제 증권회사는 기업의 생성 및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관리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최근에는 간접 금융보다 직접금융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 증권산업의 역할은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증권산업은 90년대 초 시장개방 이후 외형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 왔다. 10년 전 24개에 불과했던 국내 증권사의 숫자가 43개로 늘어났고, 이에 맞춰 자본금 규모도 6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증권산업은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국내 증권사의 숫자가 크게 늘고, 시장개방에 따른 외국자본 진출로 경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또 온라인거래가 확대되면서 막대한 전산비용을 지출한 반면 수수료는 오히려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겸업화의 급속한 진전은 증권회사의 고유영역을 허물어뜨리며,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증권산업이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제 경쟁력을 갖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 과제가 해결돼야 한다. 우선 수익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증권사들은 수익의 거의 절반을 위탁수수료에 의존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증권시장의 장기침체와 그에 따른 거래량 감소, 온라인거래 확산 등으로 수익확보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따라서 개방화ㆍ겸업화 흐름 속에서 증권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산관리업무ㆍ장외파생상품ㆍ인수합병(M&A) 등 다양한 수익원을 확보해 선진국 수준의 수익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유가증권 개념이 시급히 확대돼야 한다. 현재 증권 회사들이 취급하고 개발할 수 있는 유가증권의 범위는 법에 제한적으로 열거돼 있다. 이 같은 제한은 창의적인 상품의 개발이나 영업전략 모색에 걸림돌이 될 뿐만 아니라 급변하는 국제 금융환경에 대응하고,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는데 큰 제약요인이 되고 있다. 장외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도 완화돼야 한다. 올해 도입된 주가지수연계증권(ELS)이 투자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고객의 요구를 잘 충족시키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투자자측면에서 보면 간접상품 투자에 대한 지원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높은 특징을 가지고 있어 변동성이 크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기관투자가를 이용한 간접투자 관행을 정착시키면 개인의 투자안정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기관들의 자금여력을 높여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이와 함께 M&A가 기업가치의 증대와 증권산업의 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도록 이를 촉진시킬 수 있는 세제지원과 유연한 노동정책이 필요하다. 현재 당면한 증권산업 구조조정 문제를 원활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증권업계의 적극적인 자구 노력과 함께 증권산업이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기간산업이라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정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현수기자 hs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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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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