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6월 20일] 명분 없는 파업의 결말

유쾌하지 않은 상상을 한번 해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훌륭한 실력과 첨단의 시설을 갖춘 어느 종합병원에서 노조의 파업 찬반 투표가 벌어지고 있다. 파업의 이유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대운하 저지 투쟁에 집결하기 위한 것. 파업이 가결되면 수많은 의료진이 병원을 비우고 거리로 나서게 된다. 그 순간 병원을 찾았던 환자들은 속절없이 발길을 돌려야 하고 수술 날을 받은 중환자들은 애간장을 태워야 한다. 그렇다면 의료진과 함께 거리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다른 시민들이 그들에게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까. 현대자동차 노조가 오는 7월2일 정치 파업을 강행할 예정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조합원들조차 명분 없는 파업 참여를 비판하면서 투표를 부결시켰음에도 굳이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집행부의 입장이다. 집행부의 논리만 놓고 보면 “어차피 불법 파업이므로 투표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노조 집행부의 주장대로 투표 결과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투표는 부차적이고 절차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조합원의 목소리, 지역의 민심, 또 현대차 노조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이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현대차 노조의 파업에 이미 조합원들까지 지쳐버린 기색이 역력하다. 지역 경제에 바로 타격을 미치는 파업에 질린 울산 지역 시민들은 19일 기자회견까지 열며 파업 자제를 호소했다. 소비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 역시 여느 해보다 따갑다. 노조의 힘은 조합원들의 단결과 여론의 지지로 키워진다. 명분을 잃은 파업은 동력을 얻기 힘들고 누구의 응원도 받지 못한다. 환자들을 외면하고 거리로 나선 의료진은 시민들에게 ‘병원으로 돌아가라’는 요구를 받을 게 뻔하다. 현대차 노조 역시 마찬 가지다. 더 이상 신뢰를 잃지 않으려면 파업 철회는 물론 노동운동의 방향과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한다. 현대차 노조의 한 조합원은 노조 인터넷 사이트에 이런 글을 남겼다. ‘국민들이 외면하는 현대차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우리 모두 주위를 둘러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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