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가 리포트] 신경제 이론의 실패

신경제 이론은 죽었는가.지난 90년대 중반 이래 미국 경제학계에는 기업들이 네트워크에 의한 정확한 전망을 통해 생산을 하기 때문에 수급 불균형과 재고 누적에 따른 전통적인 경기사이클이 종식됐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신경제학파'가 생겨났다. 이 학파에 속하는 젊은 학자들은 경기 변동이 사라졌으므로 미국 경제가 예측 가능한 미래까지 장기호황을 지속할 것으로 믿었다. 유토피아적 신경제학자들이 그들의 이론을 뒷받침해 줄 기업으로 10년 만에 세계 최대 인터넷 장비회사로 부상한 시스코 시스템스를 꼽았다. 시스코는 지난해 한때 인텔을 제치고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섰던 신경제의 총아로 지목되어 왔다. 그러나 9일 뉴욕증시는 시스코를 처벌하는 분위기에 휩싸였다. 시스코 주가는 이날 6.5% 폭락했다. 존 체임버스 회장은 하루전인 8일 저녁 뉴욕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을 만났다. 그는 지난 4월로 끝난 3분기 매출이 전분기보다 30% 떨어졌고, 다음 분기에도 매출이 10% 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분기 매출 47억 달러에 적자가 27억 달러였으니, 시스코의 경영상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체임버스는 '100년만의 대홍수'라는 표현을 써가며 적자요인을 가급적 외부 경제환경의 탓으로 돌리려고 했다. 체임버스의 말을 들으면 하이테크 산업의 불황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있는데, 바로 재고문제다. 시스코 경영위기의 주범은 바로 창고에 가득 쌓인 재고물량이다. 이 회사의 재고는 지난 1월에 끝난 분기에 25억 달러 어치가 쌓였고, 이번 분기엔 조금 줄어 들었지만 22억 달러나 됐다. 분기 매출의 절반에 이르는 엄청난 물량이다. 그런데 시스코는 이 재고의 3분의 2를 폐기 처분한다고 밝혔다. 보관했다가 다시 쓸 수도 있을 텐데, 15억 달러 어치의 값비싼 물자를 굳이 사장시키는 이유는 IT 산업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에 9개월 전에 사들인 원료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신경제 이론가들은 새로운 시대에도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이 생기지만 정보시스템에 의해 곧 균형을 되찾는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시스코의 재고 누적은 이들이 주장해온 경기사이클 소멸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현대적 e-비즈니스의 선두 주자임을 자처해 온 시스코는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 공간에서 공정을 관리하고, 코스트를 줄이겠다고 공언했지만, 그 결과는 현실의 공간에 나타나지 못했다. 시스코의 경영위기는 신경제 이론에 많은 허점이 있음을 드러냄과 동시에 전통 이론이 내세우는 펀더멘털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한다. 그렇다고 고전경제 이론만으로 첨단기술 사회를 설명하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신경제 이론은 그들이 비판해 온 구경제이론과 새로운 접목을 시도, 변증법적 발전을 도모해야 할 단계가 온 것 같다. 뉴욕=김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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