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글로벌뱅크로 가자] <10·끝> 금융규제, 벽을 허물자

"모든 금융규제, 국제기준 맞게 철폐를" <br>'은행기본신용등급' C로 日·대만에도 떨어져<br>"국제 금융계 거물 영입, 규제개혁 전권 줘야" <br>2단계방카 연기등 정책일관성·투명성도 미흡



지난 91년 6월,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1년반 정도 남은 시기에 뉴욕 월가 한 호텔 프라이빗 룸에는 미국 금융가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북적거렸다. 그들은 빌 클린턴이라는 촌뜨기를 만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아칸소주 주지사 클린턴은 월가의 거물들 앞에 처음으로 섰다. 그들은 클린턴을 몰아붙이며 질문을 퍼부어 댔다. 클린턴은 월가 고참들에게 ‘자유무역’과 ‘시장 자유주의’를 역설했다. 이날 모임에서 클린턴 행정부가 금융시장의 규제를 완화하고, 대신에 월가에서 민주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일종의 대타협이 이뤄졌다. 92년 집권한 클린턴 대통령은 뉴욕 금융가의 주장을 받아들여 1930년대 대공황 때 만들어진 규제 위주의 금융관련 법률을 대거 뜯어고치는 것을 비롯, 금융산업 규제완화를 대대적으로 단행했다. 미국의 대대적인 금융산업 규제 완화는 뉴욕 금융가의 경쟁력을 회복했고, 뉴욕 월가는 미국이 세계를 움직이는 두 축, 군사력과 금융시장의 하나를 구축했다. 한국 금융산업 발전에 정부의 규제는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뉴욕에 소재한 와코비아 증권의 피터김 부사장은 “한국의 은행들이 정부와 금융당국의 비합리적인 규제로부터 독립돼야 한다”며, 이러한 규제가 은행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며, 은행은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2004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은행 규제 강도가 51위로 중하위권에 속한다. 외환위기이후 강도 높게 추진해온 금융분야 개방과 개혁 수준이 이 정도 평가 밖에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새로 도입한 신용등급인 ‘은행기본신용등급’을 통해 국내 유수은행들에게 중간등급인 C 등급을 매겼다. ‘C’ 등급은 은행의 기본 건전성, 경쟁력, 리스크 관리 능력에도 불구, 정부와 규제당국의 규제조항 변경이나 정부재정 악화 등에 민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선진국인 오스트레일리아ㆍ홍콩ㆍ싱가포르 은행은 최고등급인 ‘A’를, 일본, 말레이시아, 타이완 선도은행이 ‘B’등급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아직도 해외에 비치는 금융규제의 힘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박윤식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교수는 “정부의 동북아금융허브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제금융계의 거물을 책임자로 임명해 규제개혁에 관한 전권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싱가포르가 68년에 국제금융센터를 건설할 때와 비교하면 한국의 여건이 100배 낫다”면서 “한국도 금융과 관련된 모든 규제를 국제적인 기준에 맞게 철폐해야 할 것”이라 고 강조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규제자체를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규제체제도 특별한 제한이 없는한 모든 업무가 가능하도록 하는 포괄주의(네가티브 시스템)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현행 법체계는 금융권역간 장벽을 인정하고 있다”며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금융간 장벽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도록 법제도의 개선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권역간 장벽철폐에도 불구하고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다. 한국금융연구원 구본성 연구위원은 “은행이 아닌 보험, 증권 등 비은행권에서 지급결제 업무와 여ㆍ수신업의 겸업이 이뤄질 경우 산업자본의 금융산업에 대한 실질적 지배를 초래하거나 산업-금융의 결합으로 인한 체제적 위험을 높일수 있다”고 진단했다. 현 상황에서 규모나 영업력면에서 금융권에서 은행이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갖춘 만큼 순수 국내금융자본을 육성해야 금융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기관으로 커나가기 위해서는 활발한 해외 진출이 필수적이다. 현재 미국, 일본에 이어 중국 등지로 국내은행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문제는 국내은행들이 진출 당사국 금융감독기관에서 영업허가를 받는 것 보다 국내 금융감독기관으로부터 해외지점을 내는 인가를 받는 게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 일부 은행에서는 일찍이 진출 현지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영업허가를 받고도 금융감독당국의 인가를 받기 위해 최소 수개월간 기다려야 하는 등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중국, 영국, 홍콩, 일본 등 주요 국가 금융감독당국과 협조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진출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규제가 광범위한 것도 문제다. 은행업무에서 신탁부문의 경우 고객 자산 운용이 제한적이다. 고객 자산운용을 자기 은행에 신탁이 가능하도록 하면서도 정기예금 가입은 불가능하도록 해 고객들이 불편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90년대 들어서야 과당경쟁과 안정성을 이유로 엄격히 제한됐던 신규진입규제가 완화됐다”고 분석했다. 세계 최강 인터넷 국가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인터넷전문은행 설립도 허용할만하다. 현행 법상으로는 인터넷 전문은행으로 가기에 허용이 사실상 어렵다. 이화언 대구은행장은 “구미 선진국들처럼 정부의 규제가 완화되면 사이버지점을 인터넷 전문은행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은행은 2001년 개점한 사이버 독도지점이 예금잔액 1,000억원이 넘는 등 새로운 유통채널로 자리잡았다. 금융감독당국이 은행산업의 블루오션을 만들어내기 위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규제완화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연초 은행권을 바짝 달아오르게 한 방카슈랑스 2단계 실시여부도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일관성문제를 의심케 한 대목이다. 당초 재정경제부 등 정부가 밝혔던 바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은행들은 자동차보험 등 대다수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영역이 대폭 확대될 예정이었으나 보험업계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방카슈랑스 실시여부와 내용에 대한 검토를 재경부와 금감위가 수개월 지연하면서 당초 준비해오던 작업에 차질을 빚은 것은 물론 수백억원 이상의 재산상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일부 보험상품 판매는 3년이상 연기되는 등 제도적 일관성이 훼손된 것도 주요한 문제점이다. 시중은행들은 “정부가 밝힌 일정에 따라 준비해온 것 자체가 무위로 돌아가 정책의 신뢰를 잃은 게 방카슈랑스 논란에서 벌어진 최고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규제완화 못지않게 제도추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투명성을 높여달라는 요구다. /특별취재팀 조영훈차장 박태준기자 최인철기자 조영주기자 김정곤기자, 서정명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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