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죽은 금융, 산 금융

김영기

미국 의결권 자문회사인 ISS의 보고서 하나가 KB금융지주를 강타하던 지난달. 경영진 간 내분으로까지 번지자 이 회사의 한 간부가 던진 말은 씁쓸하다 못해 한심하다. "한마디로 X판입니다."

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놓고 투서와 세 몰이로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서울경제의 보도가 나간 18일, 우리금융 계열사의 한 간부는 임원들을 향해 이렇게 내뱉었다. "정말 XX기 집단 같습니다."


한국 금융산업의 대표라는 두 회사의 몰골은 이렇게 참담하다. 서로를 상처 내는 것도 모자라 유언비어를 날조해 마구잡이로 헐뜯는, 이것이 바로 168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세금으로 살려낸 우리 금융산업의 현주소다.

자기 비하요, 비약일지 모르지만 우리 금융산업은 지금 '식물 상태'다. '죽은 금융'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세계 50위권에 드는 금융회사가 한곳도 없다는 표피적 현실 때문이 아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끔찍한 자화상이 우리를 더 괴롭힌다.

당장 하드웨어만 놓고 보자. 우리 대형 은행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우량 금융회사라면 15%는 돼야 한다. 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총자산순이익률(ROA)도 기준점을 한참 밑돈다. 지배구조 선진화를 외치지만 금융회사들의 체력을 감안하면 한가한 목소리로 들릴 정도로 한국 금융은 지금 위기다.


연줄 동원 급급 CEO 체질개선 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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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금융회사들은 도처의 '먹거리'신세로 전락했다.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정치적 부산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사기업의 CEO를 정하는데 학연과 지연도 모자라 온갖 정치적 연줄이 동원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적 판단에 의해 CEO 자리가 정해지다 보니 약점이 많고 외부 비판이 조금만 가해져도 사정없이 허물어진다. CEO들은 정치권이 내놓는 정책 화두에 영합하기 바쁘다. 새 정부가 들어서기 무섭게 은행장들은 서로 질세라 소비자와 중소기업을 외친다. 전형적인 '코드 금융'이다.

당국은 어떤가. 듣기 싫겠지만 우리 금융 관료들은 비겁하다. 그들은 구조조정은 잘하지만 새로운 먹거리를 만드는 데는 너무 취약하다. 보신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구조조정만 해도 그렇다. 환부를 도려냈지만 그 이후는 없다. 새살을 돋게 하는 정책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저축은행 업종 자체를 고사시키려 하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카드와 보험은 어떤가. 지난 1년 이들은 참혹했다. 규제 일변 정책에 축소지향적 영업을 하기에 바빴다. 때로는 소비자 지갑을 강탈하는 '범죄 집단'취급을 받았다. 두 업종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미래형 산업이다. 카드는 금융과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컨버전스형 전략을 통해 창출해낼 수 있는 부의 영역이 무궁무진하다. 보험은 고령화 시대에 재정이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민간 자본의 보루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금 앞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정책 대전환 통해 창조금융 모색을

그들의 입에선 오히려 "젊은 관료들이 너무 위압적이고 시장 사람들을 무시한다"는 말이 나온다. 극히 일부겠지만 그들의 입에서 '상전'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에 대해 당국자들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이젠 정말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죽이는 금융'이 아니라 '살리는 금융'이 필요하다. 업종마다 새살이 돋아나게 하는 '창조형 정책'을 찾아내야 한다.

다행히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새 금융수장인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오자마자 자본시장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시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 하나하나가 '창조 금융'의 주인공이 되게 하는 일, 그것이 바로 새 금융수장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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