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고용흡수력이 하락하면서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이 같은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경직된 노동시장과 수출산업 구조 변경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662조4,744억원이었으며 취업자 수는 연평균 2,213만9,000명으로 나타나 고용계수가 33.4를 기록했다.
고용계수란 실질 GDP 10억원당 취업자 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지난 90년대 초 60을 넘어섰으나 10여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10년 전에는 10억원의 GDP를 만들어내기 위해 60명이 동원됐지만 이제는 약 33명의 근로자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성장에 따라 고용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되레 감소, 성장과 고용의 역비례 관계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경제성장과 고용이 역비례 관계를 보이는 원인은 여러 면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산업구조의 변화로 노동집약적 제조업의 해외이전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업들이 노동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은 제조업체들을 중심으로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ㆍ동남아 등으로 속속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반도체ㆍ컴퓨터ㆍ자동차ㆍ조선ㆍ철강 등 한국의 수출주력 상품들의 해외 생산율이 급증하고 있다”며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생산의 50%가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그 비중은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마저 속속 외국으로 떠나고 있어 고용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정진호 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5%에 달하는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것은 정보기술(IT) 산업이 부품을 수입해 조립ㆍ수출하는 (가공무역적) 성격이 짙기 때문”이라며 “핵심 부품소재 산업에 대한 육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고용흡수력 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과도한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된다고 지적했다.
이 상무는 “소득수준에 맞게 인건비를 줄이는 한편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살려 투자와 함께 고용이 증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용을 줄이는 성장’이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 경제가 기술ㆍ자본 집약적 산업으로 이전하면서 고용흡수력이 과거보다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잦은 노사분규로 인한 기업의 국내투자 기피도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역협회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는 노동정책의 중심을 노동자 보호에서 일자리 창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계수
실질 GDP 10억원당 취업자 수를 나타낸다. 고용계수의 하락은 그만큼 경제의 고용창출력이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고용계수가 100에서 50으로 떨어졌다면 10억원의 GDP를 창출하는 데 전에는 100명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50명이면 가능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