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원 (대한재보험(주) 사장)양만기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재무부에서 첫발을 내디딘 지난 70년대 중반이니 벌써 30년 가까운 지기가 되는 셈이다.
나이는 비슷했지만 사회경력으로 보면 양 회장이 나보다 몇년 앞서 공직에 입문한 선배다. 양 회장과 가까워진 것은 ‘70년대 말 직장 산악회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요즘처럼 특별한 레저활동이 없던 당시로서는 주말을 이용해 산에 오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던 만큼 꽤 조직적인 산악회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양 회장과 같이 다닌 산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는데 평소 조용하던 사람이 산에 오를 때만 되면 누구보다도 날렵하고 끈질기게 오르는 것을 보고 ‘저런 면이 있구나’하고 새삼스레 놀랐다.
그 후 같은 직장에서 줄곧 함께 지내면서 그의 진면목을 하나 둘씩 알게 됐고 ‘군자의 친교는 물처럼 맑고 담담하게 그 깊이를 더한다’고 한 성현의 말처럼 그와 나 사이의 젊은 날에는 짜릿하게 재미있는 영웅담 같은 일화는 없었어도 남자들 사이의 투박한 정이 쌓였다.
양 회장은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좀더 냉정한 표현을 빌자면 대쪽 같은 선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보통 때는 그렇게 부드럽고 다정다감하다가도 일단 업무에 들어가면 얼마나 원리원칙대로 야무지게 일을 처리하는지, 같이 일하면서도 너무 깐깐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끝까지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성격이다.
수출입은행장 시절 단행했던 구조조정에 대한 평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구조조정방법과 그 추진 과정에서 보여준 탁월한 능력과 방법은 그만의 것으로서 오늘날 우리나라 기업 구조조정의 바이블로 통하고 있다.
나도 직장에서 봉급생활자로 한 평생을 보내고 있지만 생각이 젊은 사람, 합리적인 사람과 일하면 항상 스스로 새로운 의욕과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어 좋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내가 그와 깊은 우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