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IB 코피티션 생태계 구축하자] <4> 인재가 경쟁력

단기 성과 집착이 성장 가로막아… '헤드 리스크' 먼저 풀어야


인지도 확보·역량 강화 많은 시간·비용 드는데

IB부문 본부장 재직기간 평균 2년 남짓 그쳐


외국처럼 임기 보장 '인적 네트워크' 키워줘야


'투자은행(IB) 헤드 리스크'가 국내 IB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네트워크 구축, 경험 축적, 전문성 확보 등에 오랜 시일이 소요되는 IB 업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최고경영자(CEO)가 IB 담당 대표·임원에게 단기적 성과 중심의 평가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2년에 한 번꼴로 IB 담당 대표·임원이 교체되고 비전문가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등 부침이 끊이지 않는다. IB 시장 발전을 위해 긴 호흡을 갖고 중장기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서울경제신문이 국내 및 외국계 증권사 IB와 4대 회계법인, 금융당국 등 IB 업계 핵심 관계자 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0%(14명)가 IB 대표·임원의 적정 재직기간으로 '5~10년'을 꼽았다. 이어 37%(13명)는 '3~5년'이라고 답했다. '3년 미만'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9%(3명)에 불과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지도 확보, 인력의 역량 강화, 다양한 '딜(Deal)'을 통한 경험축적 등 IB의 핵심 경쟁력을 갖추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이를 묵묵히 기다려줄 수 있는 CEO는 드문 것이 현실"이라며 "IB 조직과 인력에 투자를 하지 않을뿐더러 단기간에 성과가 안 나오면 조직이 축소되거나 수장이 교체되기 때문에 IB 역량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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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 리스크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된 '5대 증권사(우리투자증권·KDB대우증권·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현대증권)'의 IB 대표·임원 임기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국내 대형 IB 육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 지난 2009년을 기점으로 5대 증권사 IB 사업 부문 본부장들의 평균 재직기간을 조사한 결과 KDB대우증권·삼성증권·현대증권 등의 평균 재직기간은 2년을 조금 넘기는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증권사 중 IB 대표가 오랜 기간 조직을 이끌고 있는 곳은 우리투자증권(2005년~현재)과 한국투자증권(2008년~현재)뿐이다.

반면 외국계 IB는 헤드에게 적정 임기를 보장해주고 있다. 김종윤 전 골드만삭스 서울지점 기업금융부문(IBD) 대표는 7년 이상 조직을 꾸렸고 이천기 크레디트스위스(CS) 서울지점 대표는 10년 이상 IB 조직을 이끌고 있다. 임석정 한국JP모건 총괄대표의 재직기간 역시 10년이 훌쩍 넘는다.

헤드의 장수 여부에 따라 IB의 성과도 갈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블룸버그 리그 테이블에 따르면 올해 3·4분기 말 국내 인수합병(M&A) 자문 시장은 씨티그룹·모건스탠리·도이치은행 등 외국계 IB가 독식하고 있다. 상위 5개사 중 국내 IB는 삼성증권 한 곳뿐이다. 그나마 삼성증권은 합병이 무산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링 주관 업무를 빼면 5위권 밖으로 밀려날 처지다.

한 국내 대형 증권사의 IB 담당 임원은 "고객사가 딜을 맡길 때 증권사의 명성을 보기도 하지만 최고책임자가 누구인지를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로 규모가 큰 딜은 전적으로 IB 최고책임자의 역량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결국 IB는 장기간의 인적 네트워크 구축이 정말 중요한 영역인데 IB 최고책임자 대다수가 단명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그룹 또는 지주사 CEO의 IB에 대한 이해 부족 현상과 맞물려 나타나는 낙하산 사태도 국내 IB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주요 요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의 한 IB 담당 임원은 "은행권 고위 관계자들에게 'IB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사고가 팽배해 있는 탓에 은행·관료 출신 비전문가들이 IB 최고책임자의 완장을 꿰차고는 한다"며 "기업공개(IPO)·M&A·채권·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사업을 따낼 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결국 국내 IB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CEO를 비롯한 경영진이 장기적 안목을 토대로 IB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매해 실적 위주의 단기적 접근에서 벗어나 최소 10~15년 장기투자의 관점에서 묵묵히 인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아울러 IB 헤드에게 딜에 대한 책임을 과도하게 묻는 경향이 있는데 적법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 딜에 대한 문책 범위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해야 국내 IB도 보다 과감한 투자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IB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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