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북한 권력지형=김정은 시대의 핵심 인물들은 이번 중앙추모대회주석단에 자리한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김정은의 왼편에는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리영길 군총참모장,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등이 앉았고, 오른편으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박봉주 내각 총리, 항일 빨치산 출신의 황순희 조선혁명박물관장 등이 자리했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최룡해다. 김정은의 오른쪽에 앉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헌법상 국가수반으로 형식적인 권위를 가진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자리 배치로 최룡해가 북한 내 2인자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최룡해는 전날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열린 김정은에 대한 충성맹세 모임에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대원수님의 유훈을 지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를 단결과 영도의 유일 중심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고 결사옹위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이날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결의하는 연설을 홀로 낭독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충성맹세 모임에서는 최룡해 뿐만 아니라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리영길 총참모장 등도 연설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최룡해의 위상이 한껏 높아졌다는 평가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인민군 충성맹세 모임만 보더라도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알 수 있다"며 "최룡해는 향후 군을 중심으로 김정은 체제를 떠받드는 주축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장성택 라인으로 분류되는 로두철 내각 부총리, 김양건 당 비서, 문경덕 평양시 당 책임비서 등이 주석단에 모습을 보인 것은 장성택 주도로 이뤄진 경제개발 계획을 꾸준히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중 로두철은 일각에서 중국 망명설이 제기 되는 등 조만간 숙청될 것으로 예측됐으나 이번 추모대회 참석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또한 장성택 라인에 대한 추가적인 숙청이 필요 없을 만큼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에 자신감을 가졌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 당국이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위해 당장 장성택 계열 인물들을 놓아둔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손을 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다만 장성택 계열 인물들이 계속해서 살아남는다면 그만큼 김정은이 자신의 통치체제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기대를 모았던 장성택의 부인 김경희는 이날 추모대회에 불참, 신변에 이상이 생겼거나 핵심 권력부에서 밀려난 것으로 추정된다.
◇충성경쟁 과열될 듯=북한은 김정일 2주기인 이날도 충성경쟁을 고조시키며 김정을 유일 영도체제 확립에 공을 들이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그 어떤 천지풍파가 닥쳐와도 백두의 혈통을 순결하게 계승해나가며 대를 이어 꿋꿋이 이어나가야 한다"며 "전당, 전군, 전민이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둘레에 단결하여 백두에서 시작된 주체의 행군길을 꿋꿋이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정은 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투철한 신념을 지니고 생사운명을 함께 하는 참된 전우, 동지가 되어야 한다"며 "혁신의 봉화가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대비약의 불길로 세차게 타번지게 하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최근 김정은의 공개행사에 동행한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등은 김정은의 발언을 꼼꼼히 메모하며 김정은의 눈밖에 나지 않게 애쓰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이 같은 충성경쟁이 자칫 국지전 도발과 같은 형태로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경계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