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이 금융감독원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전망치를 담은 의문(?)의 팩스 보고서를 제출한 지난 2003년 7월21일 외환은행은 이사회를 열고 BIS비율 10%를 달성하기로 결의하는 등 힘겹게 자구노력을 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당시 외환은행 이사회와 정부 및 금융감독당국의 회의 의사록을 종합진단하면 외환은행이 금감원에 보낸 BIS 전망이 가능성이 높다.
외환은행의 허모 차장이 금융감독원에 BIS비율 전망치를 보낸 7월21일 서울 외환은행 본점에서는 ‘2003년 경영계획 수정(안)’ 결의를 위한 이사회가 열렸다.
11일 서울경제가 입수한 외환은행 ‘제37기 제13차 이사회(2003년 7월21일 오후2시30분 개최) 의사록’에 따르면 이날 이강원 당시 행장은 “금감원으로부터 BIS비율이 10%가 안되고 단순자기자본비율이 4%가 안되면 ‘MOU(경영정상화 약정)를 맺자’는 요구를 받고 있다”며 “2003년 6월 말 기준 BIS비율이 9.4%에 도달했으나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대손충당금은 상황변수를 감안해 조정해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이사들이 “SK글로벌 사태와 하이닉스 경영위기 등으로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적립해야 한다”고 지적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이 전 행장의 이날 이사회 발언 기록만을 놓고 보면 당시 외환은행의 상황은 금감원으로부터 경영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 BIS비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이날 이사회에서 이 전 행장은 “금감원은 BIS비율 10%를 굿뱅크(Good Bank)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외환은행의 3월 현재 BIS비율은 8.3%에 그쳐 금감원으로부터 MOU 체결을 요구받고 있다”며 “현재 MOU 체결 시기는 자본유치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니 추후로 미루자고 사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따라 경비 및 대손충당금을 줄여서라도 연말에 순익 1,000억원을 달성하고 BIS비율도 10%대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환은행의 13차 이사회가 열리기에 앞서 이날 오전9시55분 외환은행 경영전략본부의 허모 차장은 금감원에 BIS비율이 6.16%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팩스를 발송했다.
따라서 외환은행의 매각을 추진해온 실무진들은 이날 오전에 금감원에 팩스를 보낸 후 이사회에 참석했고 이사회에서는 대손충당금 비율을 줄이더라도 BIS비율 10%선에 도달시키기 위해 ‘2003년 경영계획 수정(안)’을 결의한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제13차 이사회 의사록을 보더라도 BIS비율 축소 조정은 외환은행의 입장이 아니고 론스타에 매각을 위한 외압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따라서 외환은행은 몇 가지 방안 중 BIS비율이 최저치로 산정된 보고서를 정상적으로 산출된 자료들과 함께 금감원에 e메일과 팩스를 통해 보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직 외환은행의 한 관계자는 “2002년 10월 론스타 측으로부터 인수 제안이 들어온 후 재경부와 론스타간 물밑 협상이 진행돼왔다”며 “이강원 전 행장을 비롯한 외환은행 임직원들이 매각을 주도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현직 외환은행의 한 관계자는 “2003년 당시 부장이었던 전용준씨가 매각 자문사 선정의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다고 해서 외환은행 매각의 몸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외환은행에 있었던 외자유치 태스크포스는 재경부와 금감원의 지휘를 받고 있었으며 주요 의사에 대한 결정 권한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금융권에서는 론스타에 대한 외환은행 매각이 극비리에 추진된 인수합병(M&A) 사안이었던 만큼 대부분의 금감원 인사들은 외환은행의 외자유치(매각)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13차 이사회 의사록에서 “금감원이 외환은행에 대한 MOU 체결을 요구했다”는 이강원 전 행장의 발언은 당시 금감원이 외자유치에 실패할 경우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BIS비율 조작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를 지시한 핵심 관료가 있을 것”이라며 “당시 정황상 외환은행의 매각은 재경부와 금감원 핵심 인사들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