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20조엔 더 푸는 일본, 한국 2차 엔저공포] 아베의 궁여지책… 디플레 탈출 실패 위기 몰리자 '깜짝카드'

소비지출 마이너스행진… 경기회복 기대도 사라져

"지금 아니면 기회 놓쳐"<br>경제 살려 정국불안 타개… 정치적 의도도 포함된듯


"(증세 전에) 상정했던 가운데 가장 나쁜 수치에 가깝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지난 30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4월 소비세율을 4%에서 8%로 인상한 뒤 급격히 꺾인 소비와 경기지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튿날인 31일 일본 총무성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물가 수준을 고려한 일본의 실질 가계소비지출은 전년 동월 대비 5.6%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베 정권이 증세를 단행한 4월 이후 6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으로 심지어 8월의 -4.7%보다도 낙폭이 확대됐다. 총리가 직접 기업들을 압박해서 임금인상을 유도했지만 실질 가계수입은 전년 대비 6.0%나 급락했다. 악천후 등 일시적인 요인이 작용한 탓도 있지만 꺾인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세금인상 이후 일시적인 경기 냉각은 예상됐지만 3·4분기가 끝나도록 증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누구보다도 아베 총리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디플레이션 탈출이라는 아베 정권 지상과제의 기준 지표가 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이날 총무성은 9월 CPI 증가율이 전년 동월 대비 3.0%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절대적인 수치만 놓고 보면 일본은행이 목표로 제시한 2%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지만 이 가운데 2%포인트는 4월 증세가 끌어올린 인상분이다. 증세 효과를 제외한 물가 상승률은 불과 1%에 그쳤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제시한 물가목표 달성 시한인 2015년 3월까지 2%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은행의 기습적인 추가 양적완화 조치는 올해 말 소비세율 추가 인상 여부 결정을 앞두고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라는 대외 불확실성과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국내 경기라는 대내악재에 직면해 궁지에 몰린 아베 정권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꺼내 든 카드다.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꺼져가는 경기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아베 정권은 결국 일본은행을 통한 10조엔 이상의 대규모 추가 양적완화와 미리 예고됐던 공적연금(GPIF)을 통한 증시 자금투입 카드를 동시에 펼쳐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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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로 한때 빠르게 회복되던 일본 경제는 증세 여파로 지난 2·4분기에 연율 환산 기준 -7.1%로 곤두박질쳤다. 세율인상 덕분에 물가는 올랐지만 정부가 의도했던 경기 선순환에 따른 물가상승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물가 상승폭이 소득 증가를 앞지르며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는 '나쁜' 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일본인들의 삶은 날로 팍팍해지고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사그라지고 있다.

여기에 지난 6년간 세계 경기를 떠받치는 데 일역을 담당해온 미국의 양적완화가 종료되면서 일본의 수출경기도 기로에 놓이게 됐다. 시중에 풀려나던 돈줄이 끊기고 미국의 금리가 오르면 세계 각국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미국의 출구전략에 따른 충격으로 일본 경제성장률이 0.86%포인트 꺾일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완화 조치와 함께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 회계연도(2014.4월~2015.3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1.0%에서 0.6%로 하향조정한 것은 이 같은 국내외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베 정권에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가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하겠다고 제시했던 시한은 2015년 3월로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이날 일본은행은 양적완화 확대를 발표하면서 "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물가 면에서는 증세 후 수요부진과 유가하락이 물가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 같은 물가하락 압력이 잔존할 경우 지금까지 추진해온 디플레 마인드 전환이 지연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물가상승률이 둔화하기 시작한 지금 대응하지 않으면 디플레이션 탈출의 기회를 영영 놓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아베 총리도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디플레이션을 끝낼 놓칠 수 없는 기회"라며 절박한 심경을 내비친 바 있다.

JP모건체이스의 아다치 마사미치 이코노미스트도 "인플레이션이 일본은행이 바란 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며 "2년 내 물가 목표를 포기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올 12월 중에 아베 총리는 소비세율 추가 증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아베 총리는 오는 11월17일 발표될 3·4분기 GDP 지표를 확인한 뒤 증세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지만 재정 건전화를 국제공약로 내건 상태에서 가능한 한 경기부양에 나서 추가 증세 여지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다. 아직 1차 증세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증세를 단행할 경우 일본 경기가 침체로 빠져들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내년에 열리는 지방선거도 아베 총리의 시계를 압박하는 요인이다. 최근 잇단 내각 불상사로 지지율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선거 전에 어떻게든 경기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할 경우 탄탄했던 정권 기반이 무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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