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죄가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게 있다는 주장에 대해 공방이 뜨겁다. 비판론자들은 지난 2006년까지 무려 20년간 FRB 의장으로 일하면서 과도한 저금리 정책으로 자산 버블을 초래한 그린스펀이 바로 금융위기의 씨앗을 뿌렸다고 공격한다. 특히 그가 자유방임에 치중한 나머지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린스펀 전 의장도 이에 대해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과 파이낸셜 타임스를 통해 적극 해명에 나섰다. 그는 “주택시장의 거품은 전세계적인 과잉저축에서 비롯됐다”며 “서브프라임 사태는 내 탓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린스펀 원죄론 논쟁을 보면서 세상의 평가와 인심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금융 위기 전만해도 그린스펀은 시의적절하게 유동성을 관리해 미국 경제의 장기 호황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던 인물이다. 그의 발언에 전세계 주식시장이 움직였고 그의 노련함에는 언제나 미학적 수사가 따라다녔다. 그러던 찬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는 “빚내서 집사고 소비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정책 판단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책담당자의 결정에 대해 시장 참여자들이 평가를 내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그것 봐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결과론적 해석을 내릴 경우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그린스펀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억울해 할 만하다. 그가 “내가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비판받고 있다”며 불쾌한 심기를 드러낸 것도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그래도 그린스펀의 ‘가벼운 입’은 문제로 남는다. 그는 휘청거리고 있는 미국 경제에 대해 너무나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재임 시절에 그의 말은 월가의 전문가들이 여럿 동원돼야 할 정도로 난해하고 은유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직설적인 발언을 그것도 너무 자주하는 게 눈에 띈다. 아직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의 와중에 있고 그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직에서 물러났더라도 말을 좀더 아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