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최대 연기금 펀드인 헤르메스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가 국내 주식 약 1조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투자기업은 10곳 정도이며 삼성전자(005930)·현대차(005380) 등 대기업뿐 아니라 코스닥 기업 등도 포함돼 있다. 헤르메스 측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기업들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고 있으며 추가적인 투자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9일 헤르메스에 따르면 2·4분기 기준 헤르메스의 아시아 지역 펀드 운용금액은 14억460만파운드(약 2조5,600억원)로 지난 1·4분기에 비해 7.66% 늘어났으며 전체 아시아 펀드 금액의 40%에 해당하는 1조원 안팎을 한국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헤르메스는 영국 최대 연기금인 브리티시텔레콤연금(BT)의 자회사로 301억파운드(약 54조5,000억원)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자산 유형별로는 채권에 33.5%로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주식(29.7%), 부동산(21.3%), 프라이빗에퀴티(7.1%), 인프라(4.7%) 등의 순이다. 헤지펀드 투자 비율은 3.6%에 불과하다.
헤르메스의 아시아 지역 펀드는 지난 2010년 1월 설정됐으며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아시아태평양지역주식지수(일본 제외)를 비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올 들어서는 연초 이후 2·4분기까지 11.27%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헤르메스가 지분을 보유한 국내 기업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삼성화재(000810)·현대차·현대모비스(012330)·한국전력(015760)·현대건설(000720)·삼성정밀화학(004000) 등이다.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기업 중에서는 키움증권(039490)·솔브레인(036830)·인탑스(049070) 등의 지분을 1%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헤르메스는 "키움증권은 대표적인 온라인 기반 증권사로서 주식매매 거래량이 급등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고 평가했다. 또 2011년 일본 주식시장에 상장된 국내 대표 게임업체 넥슨의 지분도 0.81% 갖고 있다.
헤르메스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둘러싸고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을 공격했던 올해 6월 삼성정밀화학의 지분 5.02%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엘리엇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넥서스를 통해 공개돼 글로벌 자본의 동시다발적인 삼성 공격이 시작됐다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헤르메스는 2004년 삼성물산 주식 5%를 경영참여 목적으로 사들였다가 8개월 만에 차익을 남기고 처분한 적도 있다.
이에 대해 헤르메스는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연금 수혜자의 장기적인 이익을 고려해 자금을 운용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으며 한국 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단기 차익이나 경영참여 등의 목적으로 지분을 매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헤르메스의 한 고위관계자는 서울경제신문에 "투자 대상을 정할 때 해당 기업 경영상태뿐만 아니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련 활동사항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며 엘리엇 등과는 투자철학부터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헤르메스는 한국에서 주식을 매매할 때마다 논란이 빚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률대리인을 교체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이어 "미국·유럽보다 기술발전 속도가 빨라진 아시아 지역에 투자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한국에 이미 많은 투자를 진행 중이지만 비중을 보다 늘릴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한국도 주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시장상황을 살펴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헤르메스는 아시아 지역 펀드를 통해 중국의 주식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중국 검색 포털사이트인 바이두, 홍콩 해운업체인 코스코퍼시픽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