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달러, 세계질서를 바꾼다] 환율시장 개입 명암 정치권등 입김에 오락가락…위기땐 정책수립 失機잦아간헐적 구두개입등 잔 펀치는 내성만 키울뿐유동성 경색·쏠림땐 확실한 구원투수 역할을弱달러 당분간 지속…단기개입 필요성 의문 홍준석 기자 jshong@sed.co.kr 신용경색의 여파가 국내 금융시장을 본격 강타했던 지난 9월12일.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을 풀어 스와프 시장에 달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여파로 국내 외환시장이 "달러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은의 조치에 대해 "오락가락 하면서 시장과 소통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불과 이틀 만에 "시장 개입은 없다"는 공언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은행권은 원ㆍ달러 환율 하락을 예상하면서 달러를 매도해 돈을 벌었다. 달러 유동성 부족의 책임도 은행이 져야 한다"는 게 한은의 논리였다. ◇시장과 따로 노는 외환정책=한은은 기회만 되면 '시장 자율'을 강조해왔다. 이 때문에 재정경제부와 달리 상대적으로 외환시장 개입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들어왔다. 한은의 이 같은 태도는 지난 2004년 재경부 주도로 대규모 시장개입에 나섰다가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은 경험 때문이다. 당시 1,500억원이었던 적자는 2005년 1조8,000억원대, 2006년 1조7,000억원대로 늘었고 올해도 1조2,000억원대의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한은으로서는 외환시장 개입으로 막대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한은은 시장에서 달러화를 사들이고 풀린 원화를 환수하기 위해 통화안정증권을 대거 발행하게 된다. 그 결과 2003년부터 7월까지 발생한 통안증권 이자 부담은 27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외환시장 개입과 적자 누적은 국정감사의 단골 메뉴이다. 걸핏하면 정치권과 여론의 질타를 받다 보니 시장 개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한은 안팎의 분석이다. 가능한 외환시장에 발을 담그지 않으려다 보니 "정책 수립 때 실기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 일쑤다. 급증세를 이어가고 있는 단기 외채가 대표적인 사례다. 재경부와 금융감독원ㆍ한은 등은 외국계 국내 지점의 본지점 차입 때 손비인정 범위 축소, 외화대출 용도 실수요로 제한, 은행권 자제 요청 등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관련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시장에서 루머가 돌 때마다 한은은 부인으로 일관했다"며 "마지못해 정책을 내놓고 보니 뒤늦은 조치가 되고 효과도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과도한 정치적 논란 피해야=전문가들은 한은의 외환정책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자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민간연구소의 연구위원은 "2004년에는 카드 버블의 후유증으로 내수가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며 "환율 하락 때는 수출마저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시장 개입의 필요성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율 안정이 수출기업이나 대기업에만 도움이 된다는 일부 지적은 협소한 시각"이라며 "국민 경제에 기여한 측면이 있는데도 시장 개입의 비용만 눈에 띈다고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한은을 흔들어서는 금융시장의 급변동 때 외환시장의 손발이 묶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환율 움직임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불가능하고 '환율 조작국'이라는 오명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위기 때 시장 개입은 중앙은행의 중요한 임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효근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경제금융팀장은 "추세를 거스르는 개입은 효과 없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외부 변수에 의해 시장 변동성이 급작스럽게 커질 때 당국의 개입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현시점에서 시장 개입 필요성은 의문=한은이 시장에 개입할 때는 '잔펀치'보다 확실한 '한방'을 날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과거처럼 원ㆍ달러 환율 하락 때 간헐적인 구두 개입과 소모성 실탄 투입으로는 시장의 내성만 키울 수 있다는 것. 시장의 자율성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당국이 분명한 원칙을 갖고 위기 시에만 구원투수로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현재 환율 하락은 원화 강세보다는 달러 약세로 촉발됐기 때문에 시장 개입의 효과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이원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환율 하락이 한두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적어도 1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에 단발성 시장개입으로 흐름을 뒤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의 원화 강세를 수출업체의 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의 기회로 활용하라는 지적도 있다. 권오현 우리은행 외화시장운용팀 과장은 "달러 약세로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되는 것은 맞다"면서도 "기업들도 예전에 환율 900원대를 경험해봤고 대응책도 마련한 만큼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환율을 시장자율에 맡기는 게 맞고 추세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며 "이번 글로벌 금융경색처럼 시장이 크게 불안할 때 당국의 개입은 하나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7/10/23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