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제왕적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발언에 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과 이에 대한 청와대 측 재반격이 정치권 최대 화제다. 참여정부평가포럼 강연에 대해 선관위가 노 대통령에게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했다고 결정한 지 불과 11일 만에 노 대통령은 원광대 발언, 6ㆍ10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사, 한겨레신문 인터뷰 등으로 또 한 차례 선거법 위반결정을 받았다. 노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 결정을 받은 것은 이번이 3번째이고 그때마다 선관위 결정의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 불소추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검찰 고발(퇴임 후 기소)로 이어지는 사전 선거운동 위반에 대해 선관위는 이번에는 상황에 따라서는 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로 ‘판단 유보’를 결정했다. 잇단 선거법 위반 논란을 만들고 있는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하는 결정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청와대 측의 반응은 상식밖이다. 청와대 측은 선관위 결정 이후 “대통령의 입을 봉하라는 것이냐”며 강하게 불만을 나타냈고 한술 더 떠 “앞으로 일일이 발언하기 전에 선관위에 질의하고 답변을 받겠다”고 ‘비아냥’ 섞인 성토까지 했다. 노 대통령의 정국 돌파 스타일은 이미 지난 4년여 동안 우리에게 매우 익숙해 있다. 기성 제도와 시스템에 문제 제기를 하고 또 이로써 여론이 찬반으로 들끓으면 이를 기반으로 난국돌파의 동력을 얻어왔다. 청와대 측은 그러나 이번에 지나치게 나아갔다. 우리나라의 체제는 자유민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또 이 체제는 ‘법치’와 ‘시장’이라는 규칙을 통해 지켜져왔다. 특히 대통령중심제 아래에서는 이 같은 규칙 관리와 운영의 최고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 대선이 불과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다. 그래서 정치권뿐만 아니라 온 사회가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 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국민여론은 내년 2월에 물러나는 현직 대통령이 ‘엄정한 선거중립’을 지켜 12월 대선을 민주사회의 최대 축제로 만들어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이 같은 규칙과 여론의 희망을 앞서서 깨기 시작했으며 더 나아가 규칙을 새로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들이 혼란스럽다. 왕조국가에서는 정권교체에 해당하는 ‘국본(國本ㆍ세자책봉)’ 문제를 놓고 피를 부르는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여기에 현직 최고권력자인 왕은 적극적인 이해관계자로서 개입했다. 노 대통령의 최근 정치행보는 그가 틈 날 때마다 주장했던 ‘제왕적 대통령 시대의 마감’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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