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소득에 비해 지나친 빚을 냈고 금융당국은 이를 방관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부시 행정부의 세금감면을 지지했고 저금리 기조로 과잉유동성을 초래했다. 미국은 지난 2001년 이후 경기둔화 압력에 직면했는데 그린스펀 전 의장은 당시의 경제 문제를 미래로 떠넘겼다.”
세계적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해 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발 글로벌 금융위기 원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들은 1조달러에 이르는 쌍둥이 적자에 아랑곳없이 돈을 물 쓰듯 했고 부시 행정부와 FRB는 세금인하와 저금리정책으로 이를 조장했다는 비판이다.
스티글리츠 교수의 지적대로 당시의 문제를 미래로 떠넘긴 미국은 지금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미국인들은 1930년 대공항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에 일자리를 잃고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금융위기에 가려 있으나 언제 끝날지 모를 경기침체의 터널에 막 진입해 고통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경고까지 나오는 게 미 경제의 현주소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것도 모자라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낙인찍힐 처지에 놓였다. 지금 당장 대선을 치르지 않는 것만 해도 공화당은 안도해야 할 처지다.
19년 재임 기간 중 ‘경제 대통령’으로 추앙 받았던 그린스펀 전 의장이 오는 23일 미 의회 청문회에 선다. 그의 혜안을 듣는 자리가 아니라 그가 재임 중 취한 저금리정책에 대한 잘잘못을 가리는 자리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2003년 6월 기준 금리를 1%로 낮추고 이를 1년간이나 유지함으로써 부동산 버블을 야기했으며 지금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8년 부시 행정부의 실정을 11월 대선 때까지 끌고 갈 요량이지만 글로벌 신용위기가 피크에 치닫는 지금 과거의 잘잘못을 따져본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린스펀 전 의장이 정책 실패라고 인정하고 속죄라도 한다면 속이라도 시원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는 지난해 가을 자신의 회고록 ‘격동의 시대’ 출판을 계기로 가졌던 언론과의 릴레이 인터뷰에서 단 한번도 자신의 정책 실패를 인정한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원죄론에 대해 “당시 상황은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이 우려됐다”며 저금리정책의 불가피론으로 맞섰고 심지어 “사람들은 주장만으로 죄를 만든다. 이는 온당치 않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금융위기의 원인 규명과 제도 정비는 내년 1월 출범할 차기 정부서 차분히 따져보는 것이 온당하다. “지금은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혼란을 수습하는 것이 더 급하다”는 워런 버핏의 지적을 보면 그가 왜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지를 엿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