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稅政요동 겉과 속] '10·29'의 끝은 어디인가

대형 세제정책만 2년새 20건<br>부동산 투기 판쳐도 금리조차 인상 못해<br>세제가 경기조절위한 '전가의 보도'로 변질



[稅政요동 겉과 속] '10·29'의 끝은 어디인가 대형 세제정책만 2년새 20건부동산 투기 판쳐도 금리조차 인상 못해세제가 경기조절위한 '전가의 보도'로 변질 지난달 29일 과천 정부종합청사. 정례 브리핑을 진행하던 한덕수 부총리에게 한 장의 쪽지가 건네졌다.부동산중개업법 개정으로 실거래가 신고가 의무화되면 양도세는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이 불쑥 튀어나오자 재경부 실무진이 급히 작성한 쪽지였다. 한 부총리는 "양도세 과세 골격을 바꾸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올해 장기 세제개편 과제로 연구하고 검토한 뒤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과 닷새 후 청와대.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정부는 "1가구2주택자의 양도세를 내년부터 실거래가로 전환함과 동시에 전면적으로 실거래가로 바꾸는 내용의 입법을 2006년 중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국민의 이해 관계가 얽혀 있고 30년 동안 유지돼온 세제 정책이 일주일도 안돼 색깔을 달리하는 순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부동산 투기로는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모든 제도와 정책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며칠 후 사석에서 만난 정부의 한 당국자. 그는 "부동산 투기가 판을 쳐도 (특효약인)금리조차 인상을 못하는 상황이니…"라며 한숨을 쉬었다. 국내외 경제여건 상 금리 등 금융정책을 '툴'로 활용하기엔 제한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보면서 그려야 한다는 세제 정책. 경제학자들은 국가 경제에서 금융이 '피'라면 세제는 '뼈대'라고 말한다. 그만큼 세금 정책은 최악의 상황이 아니면 쉽게 흔들어서는 안 되는 경제의 기둥이다. 때문에 선진국에서 세제가 경기 조절 수단으로 사용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이 같은 원칙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만큼은 예외다. 정부는 망국병인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며 위헌(違憲) 논란을 불러오면서까지 20여 가지의 대형 세제 정책들을 쏟아냈다. 2003년 나온 '10ㆍ29 대책'은 보유세 강화와 투기지역 2주택 이상자에 대한 양도세 탄력세율 우선 적용 등을 통해 급등하는 부동산 시장을 잠재우기 위한 참여정부 세제 정책의 가이드 라인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경기가 대책 없이 하강곡선을 그리자 참여정부는 소득세 인하에서 특소세 폐지에 이르기까지 각종 조세특례조치들을 쏟아냈다. 세제가 경기 조절을 위한 '전가의 보도'로 변신한 모습이었다. 부동산에서 거둬들이는 세수증대가 각종 세금감면 조치에 따른 세수 감소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계산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경제 전문가가 "심하게 표현하면 정부가 세제를 갖고 고무줄놀이를 하는 것 같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투기 잡으려다 '누더기 세제' 될라 냉·온탕 부동산 정책 되레 가격상승만 초래 한쪽에선 경기부양위해 조세특례등 쏟아내 세수부족 불구'조세개혁' 의제설정도 못해 2003년 10ㆍ19 대책을 내놓은 다음날, 김진표 당시 경제부총리는 금융경영인 조찬 강연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정부 입장에서 더 강력한 것은 사회주의적인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혼쭐이 났다. 이정우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장(정책실장 겸임)을 주축으로 이뤄진 당시 대책은 이처럼 쇼크의 여진이 지금에까지 이를 정도로 초강력 조치였다. 시장은 급격하게 가라 앉았고 지난해 말 종합부동산세 법안을 입법화할 때까지 이른바 집부자, 땅부자들은 몸을 납작 엎드렸다. 지난해 9월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2008년까지 부동산 보유세를 두배 수준으로 올린다는 소식에 그들의 돈은 바다 건너 미국 캘리포니아의 부동산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책 입안자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집값은 안정을 찾았는가. 불행하게도 결과는 그들의 희망과는 반대 상황을 연출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강남 아파트의 경우 많게는 40%나 올랐다. 역대 정권 가운데 이처럼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일은 없었다. 참여정부의 계속되는 부동산 대책이 오히려 투기꾼들의 면역기능을 더욱 강화시켰다는 얘기도 나온다. 강남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투기 행위는 행정도시를 고리로 한 충청도로 옮겨가더니 올 초에는 판교로, 그리고 기업도시에 이어 이제 다시 강남으로…, 흡사 회전목마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다른 한 쪽에서는 걸핏하면 경기를 떠받치겠다며 임시투자세액공제와 특별소비세 인하 등 조세 특례 조치를 쏟아냈다. ‘샤워실의 바보’(정책이 과다하게 냉온탕을 반복하는 현상)를 떠올릴 정도가 됐다. 이제 시장에서는 “투기꾼들만 면역 기능을 갖춘 게 아니라 정부 당국자들도 급증하는 세금에 대한 감각이 떨어진 듯하다”는 비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앞으로의 세금증가는 고사하고 지난 10년 동안 늘어난 세금 규모만 산정해도 입이 딱 벌어진다. 자유기업원이 정부 자료를 토대로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올해 국민 1인당 세 부담은 270만원으로 지난해(245만원)보다 10.2%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환란 직전인 지난 95년의 126만원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두 배가 증가한 셈이다. 여기에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준조세까지 더하면…. 그리고 ‘환경 친화’라는 명분 아래 추진되는 에너지 세제 개편으로 경유 값 인상까지 예고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은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보유세 세수가 늘면 취득ㆍ등록세를 우선 낮춰주고 양도세 인하도 훗날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근소세도 낮추고 부가가치세율도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세제정책이 보다 포괄적인 세제, 더 넓혀 분배구조를 확립하기 위한 근간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법인세 등을 경쟁국 수준과 맞추겠다며 중장기 세제개혁 방안을 만들 조세개혁실무기획단을 지난 3월 출범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의제 설정은 물론 조직조차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있다. 만성적인 세수(稅收) 부족을 외치지만, 음성 탈루 소득을 과세하는 기술은 여전히 후진적이고 외국의 투기자본에 대한 과세 당국의 대응은 너무나도 허술하다. 하나 분명한 것은 부동산에 대한 고율 세금 원칙뿐이다.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조세 정책의 파인튜닝(미세조정)을 너무 자주한 것 같다. 조세 정책을 보조로 생각하면 되지만 이를 경제 정책의 중심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정부 당국자의 발언은 지금 우리의 세제 당국이 처한 현실과 과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별취재팀=안의식기자 김영기기자 이종배기자 현상경기자 miracle@sed.co.kr 입력시간 : 2005-05-0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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