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지방분권은 세계적 추세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출범 이후 전국 지방공무원을 비롯해 지역 주민들은 `지방분권개혁공약`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더욱이 민선군수 출신을 지방분권의 주무 부서인 행정자치부장관에 임명함으로서 그 기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세계은행이 지난 99년 간행한 보고서 `민주적 분권의 정치경제학`에서 `지방분권은 우리 시대의 패션이 되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듯이 지방분권은 지난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국제적인 경향이자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런 점에서 새 정부가 지방분권을 실천하고자 강력한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데 대하여 다행스럽고 올바른 방향이라 하겠다. 그러나 지방분권은 그 동안 지방분권 논의과정이나 언론 보도과정에서 참뜻과는 다소 다른 용어와 뒤섞여 사용돼 왔다. 앞으로 올바른 논의와 정책수립을 위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이에 대해 몇 가지 기술하고자 한다. 먼저 지방자치단체도 엄연히 정부이며 다만 지방정부라는 점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정부 개념에 대한 학술적 의미를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오늘날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대접하지 않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한국 뿐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전히 사회주의국가이며 집권적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 북경조차도 정문에 `북경시 정부`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중요한 것은 명칭이 아니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이다. 자치단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중앙정부의 감독아래 자기사무와 위임사무를 처리하는 공공단체이지, 스스로 지역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시민이 구성한 정부가 아니라는 뜻으로 수직적 상하관계를 의미한다. 물론 이의 연결고리는 우리나라 만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기관위임사무제도`-일본은 이미 폐지키로 결정-이다. 이와 같은 상하관계라는 고정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정부가 아무리 인심을 써서 지방으로 권한을 이양해도 지방분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하간 `官官분권`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 결국 지방에 모든 일을 맡기듯이 자주 언급되는 `중앙정부는 기획만 하고 지방에는 집행을 맡긴다`는 것과 `지방자치단체`라는 말은 세계적 패션인 지방분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는 지방분권과 자치강화는 구별돼야 한다. 지방분권은 국가주권을 각 지역으로 분할하는 것으로 국가 중심의 일원적인 정부시스템을 지역이라는 새로운 주체를 등장시켜 다원화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반면 자치는 구성원 스스로 자신들을 제어할 규칙을 만드는 등 공공결정을 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방분권 없는 자치나 근대적 의미의 국가주권이나 중앙정부를 전제로 한 `자치강화를 통한 지방분권`도 역시 지방을 새로운 주체로서 인식하는 세계적 패션과는 거리가 멀다. 국가가 있어 지방이 존재한다는 수직적 관계는 이미 낡아버린 사고라는 얘기다. 셋째로는 분권과 분산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분권은 국가권한을 나눈다는 뜻의 제도정비 문제이다. 그러나 분산은 인구, 산업시설 등을 계획적으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전시키거나 집적시키는 집행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분산에 대한 논의는 주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간 균형발전을 도모하려는 국가차원의 프로그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분권없는 분산은 지방이 스스로 노력하고 결정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야기한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지역간에 또 다른 제로섬게임을 유발할 가능성 또한 잠재하고 있는 만큼 이를 경계해야 한다. 국가와 자치단체가 같은 정부로서 수평적 관계를 구축하고 국가의 권한을 국가와 지방이 실질적으로 분할하고 각기 맡은 영역에서 상호 간섭없이 결정하고 집행하는 새로운 정부시스템을 세우는 게 진정한 의미의 지방분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방분권 또한 이와 다를 바 없다. 또 세계적 패션으로서의 지방분권은 이제 우리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선택 과제가 아닌 필수 과제가 되었다. `국토가 좁은 데 무슨 지방분권이냐`고 묻는다면 유럽의 소국 벨기에나 스위스가 다양한 민족과 언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지를 되묻고 싶다. 대답은 분명히 `개방적 체제와 철저한 지방분권`에 그 비결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김병일(서울시 지역균형발전추진단장) >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