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연구소 대외협력센터 韓昌洙 수석연구원최근 우리는 사회의 각 분야에서 리더의 권위가 흔들리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고 있다. 사회의 변화가 빨라 리더의 역할이 어느때 보다도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역사상 리더십의 위기는 반드시 조직의 위기와 연결되었다. 성공적인 기업이나 조직에는 언제나 훌륭한 리더가 존재한다.
제도(시스템)와 리더십은 조직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조직이 소유하고 있는 각종 역량들도 제도와 리더십이라는 실로 제대로 꿰어져야만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물론 훌륭한 제도만으로도 조직이 성공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은 높다. 잘 짜여진 제도는 그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제도에는 「결단」이 없다. 조직은 제도로써 각종 「예측가능한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으나 만에 하나 돌발적인 사태에 직면하면 제도는 무용지물이 되고 조직은 총체적인 위기에 빠지게 된다. 60년대 미국사회가 맞이하였던 쿠바사태나 최근 우리사회가 겪은 국제통화기금(IMF)사태가 그러한 돌발적 사태의 예이다.
우리 사회에 IMF사태가 몰아쳤을 때 종래 우리사회를 지도하던 각종 제도나
시스템은 기능을 거의 멈추고 말았다. 기존의 제도는 모두가 반복적, 안정적 상황을 전제로 하였기 때문에 이같은 초유의 사태를 처리할 프로그램을 구비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미국에 쿠바사태가 발생하였을 때는 케네디라는 지도자가 있었지만 불행히도 IMF를 맞이한 한국에는 그러한 리더십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국가적인 표류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제도와 리더십
모두가 실종되어 국가적 잠재력이 꿰어지지 못한 구슬처럼 산산이 흩어져 버렸던 것이다.
외형상 우리사회는 리더십이 강력한 나라로 인식된다. 중앙집권제의 뿌리깊은 전통이 있는데다 외국인들이 감탄할 정도로 수직적 위계질서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리더십은 의외로 허약하다. 우리나라에서 리더가 되면 그는 우선 중앙집권형 또는 가부장형 리더가 될 것인지 민주적인 리더가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선뜻 결정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사회의 민주화도 최근에야 이루어졌고 신구세대간 가치관의 갭이 커 리더십의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조직이든 소위 「재야」와 「소장파」그룹이 있어 이를 무시할 수가 없다. 장외투쟁이나 집단적 의사표현이라는 비공식적이지만 치명적인 대항수단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리더십이 취약한 것은 세가지 원인에서 기인한다. 첫째 우리사회
대부분의 리더들은 정당성 시비에 시달린다. 과거부터 우리나라의 많은 리더들은 정당성 시비에 휘말려왔다. 무력이나 낙하산인사 등을 통해 리더가 되는가 하면 리더가 되고 나서도 각종 부정의 고리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리더가 어렵게 결단을 내려도 독재(獨裁)나 전횡(專橫)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이에 반발하는 것이 미덕으로 인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비주류나 재야가 출현하는 일이 반복된다.
둘째 리더의 전문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사회전반의 뿌리깊은 제너럴리스트 우위사상으로 인해 리더의 전문적 영역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인화(人和)를 중시하고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그러나 좋은 정치가가 좋은 결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기업이 사장을 직선제 등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간관계가 좋은 「조직정치가」가 리더로 뽑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조직의 리더는 조직을 위해 훌륭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셋째 리더가 육성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어있지 못하다. 우리의 성장
과정을 돌아보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사소한 일부터 인생의 중요한 의사결정까지를 대부분 남이 대신해 준다. 심지어 결혼과 그 이후의 많은 일들도 부모나 주변의 이해관계자가 결정해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단은 용기와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결단을 해보지 못한, 결단의 연습이 되어있지 못한 인물들이 훌륭한 리더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의 CEO는 한국의 CEO에 비해 수십배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물론 한국의 CEO가 미국의 CEO보다 일을 적게 할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CEO의 연봉이 적은 것은 업무의 부가가치가 낮기 때문이다. 리더가 수행하는 업무중 가장 스트레스가 크고 부가가치가 높은 과업은 바로 전략적 결단을 내리고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다. 그러나 밤을 낮삼아 일하는 대부분의 한국CEO들이 하고 있는 일이란 그저 「관리」업무에 불과하다.
이처럼 조직의 리더가 저부가업무에 집착하면 조직도 저부가조직으로 변하고 만다. 한국사회가 향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처방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지만 그 중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리더십의 정상화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발군의 기량을 갖춘 리더가 많이 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웅은 연예계나 스포츠계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조직간 전쟁에서 승리를 견인할 수 있는 탁월한 리더들이 많이 탄생할 때 우리 사회의 앞날도 더불어 밝아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