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수권전이 열리게 되면 동양 3국은 대표단을 구성한다. 중국은 간부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처음부터 대표선발의 룰이 정해져 있으므로 거의 자동적으로 팀이 구성된다. 타이틀 보유자가 그대로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인데 그 보유자의 수효가 선수단 티오보다 많을 경우에는 교대로 출전하게 되어 있다. 제4회 춘란배에 한국 대표로 나간 사람은 6명.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이세돌, 최명훈, 박영훈이 그들이었다. 본선이 시작되는 날이면 한국기원에는 저절로 검토실이 문을 연다. 그곳에서 고단자들의 정밀한 검토가 온종일 계속되는 것인데 바둑평론가들 서너 명도 종일 그곳을 들락날락하게 된다. 이들의 관심은 재미있는 기보를 찾아내는 일이다. 누가 누구에게 이기고 졌느냐도 물론 관심사가 되지만 그것보다 더욱 반갑게 취급받는 것은 내용이다. 신수가 등장한다든지 어이없는 해프닝이 일어난다든지 엄청나게 큰 대마가 잡혀버린다든지. 2002년 5월 20일 오후에 바둑평론가들의 찬탄을 불러일으킨 기보는 역시 조훈현의 것이었다. 49세의 그가 22세의 중국 신예 딩웨이(丁偉)를 상대로 엮은 기보. “과연 못말리는 조훈현이야.” 이구동성으로 감탄과 탄식을 쏟아놓게 한 이유는 그 내용이 너무도 드라마틱했기 때문이었다. 서반의 특색이라면 딩웨이가 흑7로 축 처진 행마를 선보인 것이었다. 조훈현의 펀치력을 잘 아는 딩웨이가 일종의 아웃복싱을 시도한 수였다. ‘그렇다면 나도 서두를 것 없지’ 하고 조훈현은 백8로 빈귀부터 차지하고서 14, 16의 경쾌한 스텝을 보여주었던 것인데…. /노승일ㆍ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