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처정책 전환 의미.내용세제등 각종 혜택앞서 자생력 키우기 주력
정부가 벤처확인제도를 폐지하려는 것은 기존의 벤처지원정책이 안고 있는 문제의 근원을 뿌리부터 치유하기 위해서다.
벤처기업에 대한 과도한 보호와 직접지원을 축소하고 벤처기업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국민의 정부가 핵심사업으로 추진해온 '2만개 벤처기업 육성' 목표도 포기할 방침이다.
◆ 왜 폐지하나
당초 오는 2007년께나 폐지할 방침이던 벤처확인제도를 올 상반기 안에 없애려는 것은 이 제도가 '벤처 부작용'의 출발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 벤처캐피털 투자기업 ▲연구개발투자기업 ▲특허기술개발기업 ▲벤처평가우수기업 등을 벤처기업으로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일단 벤처기업으로 확인만 받으면 '최소한 망하지 않는다'는 보증수표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기업들은 벤처확인증을 받자마자 법인ㆍ소득세 50% 감면, 취득세 및 등록세 면제, 재산세 및 종합토지세 50% 감면 등 엄청난 세제혜택을 누릴 수 있다. 대도시지역에 회사를 설립하더라도 벤처기업은 등록세 3배 중과대상에서 제외된다.
직간접 금융지원과 입지, 수출판로 지원을 받고 병역특례자들을 우선 지원받는 등 인력들도 싼값에 지원받을 수 있다.
이러다보니 무한경쟁ㆍ적자생존의 냉엄한 질서가 형성돼야 할 벤처시장에 나태한 경영 마인드가 싹트고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와 각종 부패가 만연하게 됐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특히 주식시장에서는 '정부가 인증한 벤처기업=기술력 높은 기업'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무차별ㆍ묻지마 투자를 야기하는 문제점으로도 작용해왔다.
◆ 2만개 벤처 육성목표도 수정
실적과 명분에 연연하기보다는 내실을 다지겠다는 정부의 방침도 주목할 만하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올해 말까지 2만개 벤처기업을 육성한다는 목표에 집착한 결과 부처마다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경쟁이 불붙고 과잉ㆍ중복투자도 빈발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며 "목표를 포기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벤처기업 숫자불리기는 통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22일 현재 벤처기업으로 인증받은 기업 1만1,630개 중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기업은 전체의 13.57%인 1,578밖에 안된다.
반면 관변 연구기관들이 지정한 벤처기업은 6,399개(55%)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정부의 손을 탄 벤처가 시장에서 검증된 벤처보다 5배 가까이 많은 셈이다.
2만개 벤처기업 육성목표 포기는 그동안 정부를 옭아매온 '숫자의 마술'에서 탈피, 전혀 새로운 틀을 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벤처캐피털 활성화
정부는 기존의 벤처육성책이 벤처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건전하고 강한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던 벤처정책에 시장의 논리를 도입하겠다는 것. 이에 따라 벤처기업의 자금조달에 젖줄 역할을 하는 벤처캐피털 및 코스닥시장을 대폭 정비할 계획이다.
중기청은 오는 3월까지 전국 벤처캐피털에 대해 투자 및 영업실적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 개점휴업 상태인 회사는 등록을 취소할 계획이다.
벤처캐피털은 지난 98년 60개에서 3년여 만에 145개로 급증했지만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는 곳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실정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등록이 취소된 벤처캐피털은 단 한군데도 없다.
◆ 강시벤처 퇴출
시장에서 버틸 힘이 없는데도 정부의 지원자금으로 연명하고 있는 벤처기업들은 과감히 퇴출시킨다는 게 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옥석 구분 없는 퍼주기식 정책이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낸 만큼 이제는 정책의 시장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의 경우 코스닥시장에 신규 등록된 기업은 174개, 퇴출 조치된 기업은 9개에 불과했다.
2000년 이후 미국 나스닥(NASDAQ)시장에서 퇴출된 기업이 1,412개에 달하는 것은 우리의 퇴출기준이 얼마나 허약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박동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