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모두에게 안전한 시위를

지난 연말 발생한 농민시위로 인한 일련의 사태는 가뜩이나 황우석 교수 논문조작 사건으로 인해 우울한 우리의 마음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었다. 어떤 경찰관은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데 대해 항의하기 위해 자신이 승진할 때 받았던 모자를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며 청와대에 보내기도 했다. 두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태를 놓고 한쪽에서는 폭력시위라 규탄하며 시위문화의 변화를 촉구하고, 한쪽에서는 공권력의 과잉진압을 비난한다. 하지만 이런 논란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폭력시위와 과잉진압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이것이 과연 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하기만 하면 근절되는 문제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폭력시위-과잉진압 악순환 폭력시위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쌀시장 개방으로 생존권을 위협받는 농민들의 절망에 생각이 미치면 단지 폭력시위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매도할 수는 없다. 오죽하면 그 순박한 농민들이 그렇게 변했을까 생각하면 그런 농민들의 절규를 무참히 짓밟은 공권력은 용서할 수 없는 괴물이라 느껴진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고 전경이 된 우리의 아들들이 시위 현장에 동원돼 각목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시위대 앞에 방패만 달랑 들고 인의 장벽을 치고 있다. 이 아이들을 향해 흥분한 시위대가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두르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그 모습에 흥분한 아이들이 방패로 시위대를 찍어대고 발길질을 하면서 현장은 전쟁터가 되고 만다. 그렇게 한판 전쟁을 치르고 나니 돌아오는 것은 과잉진압이라는 비난뿐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시위 현장에서 사상을 입은 농민들이나 전경들은 모두 안타까운 희생자들일 뿐인 것이다. 폭력시위는 결국 강경진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시위 현장에서 폭력이 사라지려면 원천적으로 폭력시위가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시위대에 폭력의 자제를 촉구함으로써 폭력시위가 근절될 수 있다는 생각은 강경파의 구호와 외침이 힘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위 현장에서의 군중심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순진한 망상이다. 특히 이번 농민시위처럼 한 맺힌 사람들의 분노가 표출되는 현장에서는 평화적으로 시작된 시위라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숫자가 불어나면서 누군가는 과격한 행동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평소에 지극히 온순하고 평화적이던 사람들도 덩달아 과격해지게 마련이다. 이런 성난 군중들 앞에 전경들로 인의 장벽을 쳐서 “평화적으로” 시위를 막겠다는 것은 전경들의 생명과 안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참으로 무책임하고도 무모한 발상이다. 시위대의 폭력으로 어린 전경들이 쓰러져가는 현장에서 지휘관인들 소극적인 방어만을 고집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피 흘리며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며 격앙될 대로 격앙돼 있는 전경들에게 진압 명령이 내려지는 순간 이들 역시 통제가 불가능한 폭력집단이 돼버리는 것을 과연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결국 시위대와 전투경찰이 이렇게 매번 온몸으로 부딪히는 한 폭력을 피하기는 어렵다. 시위와 진압 모두에서 폭력이 사라지려면 근본적으로 이들이 몸으로 부딪히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몸 충돌 상황 사전에 차단해야 즉 평화적인 시위는 얼마든지 허용하되 약속된 선을 넘으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최루탄을 발사하는 등의 방법으로 즉각적으로 시위대를 해산시켜야 하며 시위 현장에서의 흉기 소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벌에 처해야 한다. 어째서 인명 피해 없이 군중을 해산시킬 수 있는 시위진압장비들을 놔두고 어린 전경들에게 흉기로 무장한 성난 군중을 온몸으로 막으라고 한다는 말인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외국에서 경찰이 몸으로 시위대를 막다가 200여명씩 부상을 당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시위대의 생명과 안전 못지않게 소중한 것이 이를 막는 전경들의 생명과 안전이다. 그리고 막는 자들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돼야 과잉진압으로 인한 시위대의 인권 침해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이미현 <변호사·법무법인 광장·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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