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아르헨티나가 국가부도(디폴트) 사태에 직면했다는 우려가 다시 일면서 중남미 지역의 주식시장은 일제히 하락했다. 또 지구 반대편 동아시아 지역의 주식시장도 경제 지표들이 나쁘게 나오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두 지역에 이 같은 심각한 경제 문제들이 나타나는 이유는 동일하다. 바로 선진국들, 특히 미국 경기의 침체 때문이다.
국가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아르헨티나의 노력과는 정반대되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첫째, 미국의 침체로 아르헨티나 경제성장의 한 주요 동력이 사라졌다. 아르헨티나 수출의 절대량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1ㆍ4분기 수입은 연율 기준 5.4% 감소했다.
둘째, 지난 99~2000년 사이에 부풀어올랐던 미국 정보통신(IT) 산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투자자들은 더 이상 위험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 않게 됐다.
아르헨티나에 있던 돈이 안정성을 찾아 미국으로 몰리면서 11일 미국 재무부 채권과 아르헨티나 국채간 금리차는 13%까지 벌어졌다.
셋째, 아르헨티나는 자국 화폐인 페소화를 미국 달러에 고정시킨 결과 자국의 경쟁력을 상실했다. 올들어 브라질의 레알화 가치는 아르헨티나 페소화에 대해 30%나 폭락했다.
넷째, 아르헨티나 국가 내의 경제ㆍ정치적 난제들로 재정이 악화됐다. 아르헨티나의 정부 부채는 적절한 금리와 경제성장 수준을 유지하기에는 너무나도 과도한 상태다.
한편 97년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빠른 회복세를 보이던 동아시아 경제도 멈춰섰다. 아시아 지역의 수출, 특히 전자제품의 대미 수출이 크게 줄어들었다.
경제성장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해졌다. 싱가포르의 경제가 2ㆍ4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이 같은 전망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동아시아의 상황은 97년의 금융위기가 재연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역 국가들은 환율 방어를 시도하지 않으며 외환보유고도 과거에 비해 많이 확보됐다.
한국ㆍ말레이시아ㆍ타이ㆍ타이완ㆍ싱가포르ㆍ홍콩 심지어 인도네시아도 경상수지 흑자 폭이 확대됐다. 이들 국가들은 미국의 IT 거품에 동승해 막대한 수출을 올렸지만 미국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 국가 대부분은 97년 악몽의 고통이 희미해지며 구조조정을 게을리했다. 이제 다시 구조조정을 단행할 때다. 개혁 없이는 국내 수요와 경제성장을 이끌어낼 기회를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시아ㆍ중남미 등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이 계속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그 결과는 매우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국가들이 어려움을 갖고 있는 한 단기간 경제성장에 대한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들 국가에 긴급 자금지원을 꺼려함에 따라 국제 자본은 안전한 피난처로 움직이려 할 것이다.
미국ㆍ유럽ㆍ일본의 경제가 계속 침체되는 한 이런 위험은 계속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 타임스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