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빈 라덴 사망] 9·11 등각종테러주도… 美 '공적1호'

9ㆍ11테러를 일으킨지 10년만에 사살당한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을 상대로 9ㆍ11을 비롯한 크고 작은 테러를 일으켜 미국의 ‘공적 1호’로 꼽혀왔다.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이슬람 무장단체인 알 카에다를 창설하며 미국의 ‘주적’임을 자칭했다. 지난 1957년 사우디라아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6세부터 이슬람 단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으며 상속받은 건설회사를 운영하다가 종교적 신념에 이끌려 사우디를 떠났다. 그가 처음으로 무장 활동에 나선 곳은 1979년 구 소련의 침공을 받은 아프가니스탄이었다. 그는 구 소련이 19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때까지 아랍 의용군들을 지원했고 이후 이슬람 무장조직 알 카에다를 창설했다. 1991년 걸프전 발발로 미군이 사우디에 주둔하자 그는 사우디 정부에 미군 주둔을 허용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가 석유 이권을 위해 거절하자 사우디 정부를 강력 비난했고 결국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이후 아프리카 수단에서 사업을 재개했지만 미국과 유엔의 압력에 굴복해 수단에서 추방당했고 이 때부터 그의 반미 감정은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1996년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와 탈레반과 접촉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지하드(성전)를 추진했고 이 때부터 빈 라덴과 알카에다는 미국의 ‘공적 1호’로 지목된다. 빈 라덴은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대사관 폭탄테러와 2000년 예멘 근해 미 군함 습격을 진두지휘했고 마침내 2001년 9ㆍ11테러를 일으키며 미국과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가 일으킨 9ㆍ11테러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연이어 전쟁을 일으킨 배경이 됐다. 그는 9ㆍ11테러 이후 미국의 추적을 피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은신처를 만들고 미국 수사당국을 따돌렸다. 빈 라덴은 종종 영상 메시지와 성명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주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외곽에서 빈 라덴이 도피생활 10년만에 미군에 사살됐다고 발표하면서 그의 사망 사실은 공식 확인됐다. 비록 서방세계는 그를 악의 화신으로 묘사하지만 반미 무슬림 국가들은 그를 여전히 존경과 숭배의 대상으로 모신다. 일부 전문가들은 2000년대 이후 현대사를 뒤바꿔놓은 인물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한다. AP통신은 그가 평생 광신주의와 테러리스트의 길을 걸어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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