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사정이 호전돼 만기 전에 회사채를 앞당겨 상환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회사채 상환이 신규발행 규모를 넘어서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채권물량 부족사태를 초래, 금리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회사채 순상환으로 인한 금리하락은 다시 증시활황으로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직접금융조달 여건을 더욱 좋게 해 금융시장 전반의 자금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8일 한국은행 및 투신업계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지난 5월까지는 자금확보를 위해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 규모가 상환규모를 앞서는 현상이 계속됐다. 하지만 이달들어 자금여유가 있는 기업들이 잇달아 높은 금리로 발행했던 회사채를 조기 상환하면서 IMF체제 이후 처음으로 상환이 발행규모를 웃돌았다. 6월들어 7일 현재 회사채 발행규모는 3,244억원에 그쳤지만 상환은 2배가 넘는 7,198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주말인 12일까지의 계획도 상환이 5,581억원으로 발행 2,451억원을 웃돌고 있어 앞으로 상환 초과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실적이 좋아져 자금여유가 생긴 일부 우량기업들이 IMF체제 초기에 자금확보 차원에서 20% 이상의 금리로 발행한 고금리 채권을 1년여 만에 현금으로 조기상환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이같은 조짐은 올들어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발행 4조3,835억원, 상환 2조3,924억원으로 회사채 발행초과액이 2조원에 육박했으나 이후 발행초과 규모가 빠르게 줄어들어 지난 5월에는 6,773억원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마침내 6월에는 상환이 발행을 앞선 상환초과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달 중순 IMF 직후인 98년초 22~25%의 높은 금리에 발행한 회사채 약 3,000억원을 조기에 현금으로 상환한 데 이어 지난 7일에도 다시 1,0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만기 전에 갚았다. SK를 포함한 일부 SK그룹 계열사와 LG그룹 게열사도 회사채 조기상환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견기업들도 회사채 상환에 나서 태평양은 지난 3월과 4월 두차례에 걸쳐 모두 200억원의 회사채를 현금상환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회사채 현금상환에 적극적인 이유는 고금리에 발행한 회사채를 조기에 갚아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정부가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부채비율 축소방침에도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회사채 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7%대에 진입하는 등 전반적인 금리하락세가 나타난 회사채 상환에 따른 자금이 투신 및 은행 등 채권매수기관으로 흘러들어와 채권매수여력이 커진 동시에 우량채권의 공급물량이 크게 줄어든 게 주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저금리 현상의 고착화는 다시 증시활황으로 연결돼 기업들의 유상증자 등 직접금융 여건을 좋게 만들고 있다. 기업들이 쉽게 증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은 회사채 공급감소 요인으로 작용해 금리하락세를 부추기고 있다.
권경업(權景業) 대한투신 채권투자팀장은 『경기회복으로 자금상황이 나아진 기업들이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일종의 빚인 회사채 상환에 적극적이어서 최근 자금선순환 구조의 단초가 마련됐다』고 지적하고 『이런 현상이 갈수록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석훈 기자 SHL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