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정부 「경제위기」 불감증세인가/청와대 경제장관회의 재탕대책 일관

◎돈줄 막혀도 “자금 안정세” 보고/한보수습책도 주먹구구식 인상김영삼 대통령 주재로 31일 열린 긴급경제장관회의에서 보고된 대처방안은 정부의 상황인식이 예상밖으로 안이하며 사태수습 자세도 매우 소극적이 아니냐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최근 우리 경제는 지난 연말에 불거진 노동법 개정파문에 이어 한보그룹 부도라는 대형악재까지 겹친데다 생산·투자·소비·고용 등 주요 지표가 수년래 최악의 국면에 이르렀음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 또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로 연초이후 한달도 못가 무역수지 적자가 사상최대 규모인 41억달러(29일 현재)에 이르고 있고 엔저가속으로 교역조건이 급격히 악화되는 실정이다. 이와함께 한보사태의 여파로 중소기업들이 심각한 자금경색에 시달리는 등 어음부도율이 지난 82년 장령자사건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우려된다. 대내외 경제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국면에 이르렀는데도 이날 회의에서 결정된 대처방안은 대부분 이미 발표된 내용을 재탕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바람에 이런 수준의 대책이라면 구태여 대통령주재라는 격식까지 갖춰가며 「긴급경제장관회의」를 가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리 경제의 현실과 정부의 상황인식이 괴리된 대표적인 예로는 무엇보다 자금시장의 동요가 꼽힌다. 한보부도이후 국내 기업들은 일부 최우량대기업을 제외하곤 국내외 자금줄이 거의 막혀있는 상태다. 한보사태로 은행대출 창구가 얼어붙고 회사채발행마저 어려워져 증시등에서 일부 그룹의 부도설 등 악성루머가 떠돌며 해외증권발행이 연기되고 조달금리가 마구 치솟는 상황이다. 이날 김 대통령도 『근거없이 나도는 악성루머로 자금난에 몰리는 기업들이 있다』며 관계당국을 간접적으로 질책한 뒤 즉각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함으로써 한보사태이후 자금시장의 교란 양상을 사실상 인정했다. 반면 이날 한승수 부총리는 충분한 자금공급(설까지 6조원)계획으로 회사채금리가 한자릿수로 안정되는 등 자금시장이 안정세를 회복했다고 보고했다. 돈을 풀어 금융권안에서는 자금이 남아돌아 금리가 하락해도 돈이 돌지않아 기업은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외면한 보고라는 지적이다. 저수지(금융권)와 논(기업)을 연결하는 수로가 한보사태로 막혀 논이 갈라진 마당에 수로는 고치지 않고 물을 퍼부어 저수지 수위가 높아지자 만족하고 있는 양상이다. 반면 중소기업을 비롯한 재계는 한보부도이후 집중적인 통화공급확대로 금융부문은 외견상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실물경제와의 연결고리가 사실상 끊어져 금융과 실물이 서로 겉도는 형편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한보철강에 대한 추가자금지원계획은 정부의 사태파악능력과 파문해결을 위한 원칙이 무엇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정부가 지난해 10월부터 한보의 위기징후가 나타나 대책을 세워왔다면 실태파악도 정확히 안된채 어떤 근거에서 부도처리 결정을 내렸고 어떻게 추가자금 지원방침을 정했는지 명확한 설명이 없다. 더욱이 정부는 이같은 추가 자금지원을 가뜩이나 수조원의 부실금융에 멍든 금융기관에 떠넘기고 있어 한보에 이어 금융기관의 연쇄부실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우성, 유원, 덕산 등 대형부도사건이 날 때마다 정부는 대출확대, 세제 및 세정지원을 발표하고 현장에서는 정부대책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는 아우성을 되풀이한 전철이 이번에도 예외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따라 일각에서는 이같은 「정책진공」상태가 그동안 금개위 파문, 한보철강의 산업합리화 지정검토 등을 둘러싼 청와대 재경원 통상부 등 정부부처간의 갈등이 쌓여 파생된 결과일지 모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최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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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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