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변화를 거부한 유럽의 비극

지난 2007년 기자가 보스턴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어학원에서 준비한 도시관광을 따라나선 적이 있다.

관광 도중 가이드가 옛 시가지를 가리키며 보스턴은 300년이 넘는 역사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건축기준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순간 옆에 있던 이탈리아 친구가 피식,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가 태어난 로마는 열 배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비단 이탈리아뿐만이 아니다. 그 동안 몇 차례 유럽의 여러 도시를 다녀오면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그들의 전통과 문화 유산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지난해 5년 만에 다시 찾은 스코틀랜드의 주도 에든버러도 마찬가지였다.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칼튼힐에 올라 처음으로 나온 한마디는 "변함 없구나"였다. 이 같은 감탄은 바로 부러움이었다. 길에서 만난 유럽인들 역시 유구한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관련기사



하지만 최근 유럽 재정위기를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오랜 전통에 대한 집착이 문제를 키운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과도한 재정 지출과 복지를 버리지 못한 게 단적인 사례다. 위기 상황에서도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표를 의식해서, 국민들은 익숙해진 복지혜택을 포기하지 못해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유럽식 복지 모델 자체를 포기할 필요도 없었다.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해서라도 썩은 가지 몇 개쯤 처내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의 안일한 자세는 사태를 악화시켰고 그들은 조상이 물려준 자랑스러운 전통과 유물마저 지키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최근 그리스는 2차 구제금융을 받기로 하면서 민주주의의 전통을 사실상 포기했으며, 당분간은 과거와 같은 복지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심지어 지난해 독일 정치권에서는 그리스 재정위기 해결을 위해 역사적 건축물과 문화재를 팔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변함이 없다'라는 말에는 '발전이 없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과거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점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지금은 변해야 할 시점이다.

고병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