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따라서 경기가 연착륙(소프트 랜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한편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은 “지금 당장은 경기부양 노력이 큰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경기가 어려운 때일수록 구조조정과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투자를 병행하면 경기가 상승국면으로 돌아섰을 때 우리 경제도 새로운 도약을 맞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경제상황이 IMF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국면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현재의 경제상황과 앞으로의 전망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우리 경제는 현재 선진국의 경기침체, 이라크전쟁, 북핵문제,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의 외부요인으로 크게 위축된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국내투자와 소비심리도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 때와 비교해 볼 때 기업의 재무건전성, 외환보유액, 단기외채비중 등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에 위기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최근들어 외국인 투자가 크게 위축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인 경기침체 영향도 크지만 우리의 투자환경이 중국 등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도 한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갖고 계십니까.
▲현재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세계정세 및 경기불안 영향으로 외국인투자가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정부는 앞으로 외국인 투자 유치를 확대하기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또 과거의 물량 중심의 투자유치 정책보다는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높은 공장설립형(Greenfield) 투자를 유치하는데 주력할 방침입니다. 이를 위해 부품 및 소재 전용공단 조성 등을 통해 투자입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또 첨단기술을 보유한 세계 일류기업이 투자할 경우 현금보조금(cash grant) 등 투자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외국인 투자에 대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새 정부 출범후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지방경제를 육성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물류비용 등의 문제로 지방에 공장을 설립하거나 운영하는 것을 꺼립니다. 따라서 이런 균형발전 계획이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도 많은데요.
▲경쟁력이 높은 외국의 기업이나 연구소를 유치하는 관문으로 활용하기 위해 경제특구가 필요합니다. 사실 이런 기업이나 연구소를 지방으로 유치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이런 경제특구에는 지방에서는 유치하기 어려운 첨단기술 산업을 주로 유치할 것입니다. 지방에 대한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 이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단지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세제 등 여러 면에서 혜택을 부여할 계획입니다. 수도권이 계속 비대화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국가 전체적으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업발전 단계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섬유 등 일부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동남아 등지로 옮기고 있어 산업공동화 우려도 높습니다.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취할 산업과 버릴 산업을 택해야 합니다. 이런 구조조정이 활발히 일어나야 경제도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일부 산업 또는 기업의 해외이전은 꼭 나쁘고 두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사정에 맞지 않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의 경우 구조조정을 통해 정리해 나가는 한편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서비스산업의 경제기여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제조업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서비스 산업은 어떻게 육성할 계획이신지요.
▲국내 서비스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52%를 차지할 정도로 외형은 크게 늘어났지만 낮은 노동생산성 및 부가가치 등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이 세계 일류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수요창출 및 공급기반 확충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컨설팅, 유통ㆍ물류, 디자인 등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한편 관련 연구개발(R&D) 지원에 주력할 방침입니다. 또 오는 7월까지 지식기반 서비스업을 차세대 성장유망업종으로 육성하기 위한 구체적 실행 방안도 수립할 예정입니다.
-전세계적인 경기침체 영향으로 한국산D램에 대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상계관세 부과 등 통상마찰이 더욱 불거질 것으로 우려됩니다. 통상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 없을까요.
▲최근 반도체ㆍ자동차ㆍ철강ㆍ조선 등 우리의 수출주력제품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 등 다양한 형태로 통상압력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수출이 늘어난 데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통상문제는 일단 발생하면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주요 교역국과의 사전협의, 각종 수입규제에 대한 사전모니터링강화 등을 통해 통상마찰을 예방하는 노력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이미 수면위로 떠오른 문제에 대해서는 통상사절단을 파견해 우리 정부 및 업계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불공정한 통상압력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국제규범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것입니다.
-최근 세녹스 등 대체연료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대체에너지 개발노력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습니다. 대체에너지 개발에 대한 정부의 노력이 미흡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만….
▲지난해부터 자동차용 연료 첨가제가 `신개념 알코올연료`를 내세우며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제품은 한국석유품질검사소의 검사 결과 휘발유 품질기준에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이런 제품은 휘발유에 부과되는 교통세 등을 피하기 위한 유사 휘발유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대체에너지 개발 및 보급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등을 중점적으로 개발해 2011년까지 대체에너지 비중을 5%로 높일 계획입니다. 현재 이를 위해 대관령 풍력단지 조성, 태양광 주택 보급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최근 남동발전 매각 무산으로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작업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습니다. 발전사업 민영화를 비롯한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과연 예정대로 추진되는 것인지요.
▲최근 남동발전 경영권 매각계획이 투자자들의 내부 사정으로 중단되었습니다만 정부의 매각 방침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우선 증시상장, 민영화 펀드 조성 등을 통해 민영화가 보다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한 후 경제여건이 호전되는 대로 다시 매각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배전 및 판매부문도 발전회사간의 전력 거래 모의 운영을 거쳐 완벽한 분할이 이뤄지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 좌우명
`진실이 최선의 길(Honesty is the best policy)`
부끄럽게도 젊은 시절에는 이렇다 할 좌우명을 정해 놓고 살지 못했다. 중년에 접어들 즈음에야 지난날을 되짚어 어떤 행동기준에 따라 살아왔는가를 생각해 영어의 금언하나를 삶의 지표로 삼기로 했다.
중학시절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접했던 이 말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처음 쓰여졌다고 하는데, 미국 실용주의의 대표자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로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Honesty is the best policy`는 우리말로는 `정직이 최선의 길`이라고 풀이되고 있으나 honesty는 진실됨(truthfulness)이라는 뜻도 있으므로 나름대로 `진실이 최선의 길`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공직 생활을 해오며 크고 작은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이해를 달리하는 기업이나 국민들을 설득하고 동참시키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길은 오직 진실을 추구하고, 진실만을 말하는 것임을 느낄 때가 많았다. 특히 옛 재무부 공보관 시절 어떤 사실을 숨기거나 고의로 왜곡하는 일처럼 대세를 그르치는 일이 없다는 것을 가슴깊이 느꼈다.
■ 발자취
윤진식 장관은 외모와 말씨는 단아한 선비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일에 대한 집념과 추진력은 남다르다.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97년 대통령 비서실 조세금융비서관으로 일할 때 경제수석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에게 외환위기 가능성을 직접 보고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데서 그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윤 장관은 말수가 적다. 그 대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는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취임한 직후 내부 업무보고와 함께 산자부 출신 인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업무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래서 박운서 데이콤 부회장, 이희범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등 산자부 출신 인사들은 일에 대한 윤 장관의 열정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취임 직후 1박2일간의 일정으로 과장급 이상 간부들이 참석하는 연찬회를 가졌다. 연찬회에서도 격의없는 토론을 유도해 되도록 많은 의견을 들었다.
윤 장관은 이제 외국인 투자 유치 및 수출확대의 선봉에 섰다. 취임 직후 커크 폰드 페어차일드 회장 등 외국의 유력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잇따라 만나 국내투자확대를 당부하고 있다. 특히 오는 22일부터 26일까지는 30여명의 다국적기업 투자책임자를 초청해 이들의 투자를 이끌어낼 예정이다. 또 29일부터는 중동지역을 돌며 수출확대를 위한 여건조성에 주력할 계획이다.
그의 과거 업무 스타일로 보면 이런 적극적인 행보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2001년 관세청장으로 재직하면서 인천공항 입국장비리척결 등 다양한 세관 업무 개혁조치를 취해 `세관이 크게 달라졌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또 지난해에는 재경부 차관으로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남북회담을 매끄럽게 진행하기도 했다. 조세 및 금융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는 윤 장관이 실물경제를 어떻게 활성화시킬지 주목되는 점도 이 때문이다.
◇약력
▲46년 충북 충주생
▲청주고, 고대 경영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원(경제학석사) 졸업
▲행정고시 12회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국제금융국장
▲대통령 비서실 조세ㆍ금융비서관
▲세무대학장
▲관세청장
▲재경부 차관
내가 본 윤진식 장관
이희범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윤진식 장관이 취임한지 며칠후 산자부 출신 몇 명의 OB들은 장관으로부터 “선배님들이 가야 할 자리를 맡게돼 미안하다”는 전화를 받고 어리둥절했다. 윤장관은 직원들의 길흉사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업무면에서는 끝장을 봐야 하는 성품 때문에 부하직원들은 `진돗개`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윤장관은 재무부 금융정책과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후 주로 금융정책과 국제금융 분야를 섭렵한 금융통이다. 외환위기 당시 IMF행의 불가피성을 대통령께 보고하고 협상대책을 세우도록 건의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얘기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뉴욕총영사관과 주OECD 공사로서 명성을 떨쳐 국제금융가에서도 널리 알려진 보배다.
윤장관은 개혁정신이 투철하면서 현장을 중시한다. 관세청장 시절 본부에 있는 우수한 인재를 일선세관으로 보내고 현장경험이 많은 직원들을 본부로 전보하는 파격적인 인사교류를 실시하자 불이익을 받은 일부 공무원들이 불평했으나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청장은 전국 세관을 누비면서 현장 행정을 강화했다. 윤장관이 휴일을 마다하고 업계대표들을 만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윤장관은 강직하면서도 청렴한 공무원의 표상이다. 작년에 딸을 출가시키면서 부내 직원은 물론 친구들에게 까지 알리지 않은 것은 지금도 과천관가에서 회자되고 있다. 또한 그는 수년전 고인이 되신 어머니께도 효심이 높기로 소문났다. 아들이 TOEFL 시험에서 만점을 맞은 후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고 소감을 얘기한 것도 아버지에게서 배운 효심일 것이다.
<대담: 김희중 경제부장, 정리: 정문재기자 timoth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