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중소 IT업체의 그늘

IT 관련 학과 졸업생들이 평생의 업을 찾아 갈 곳은 강남의 테헤란로도 있지만 상당수는 구로동에서 가리봉동에 이르는 디지털 산업단지다. 어디에 둥지를 틀든 마찬가지겠지만 문제는 소위 구로동으로 알려진 이 지역에 대한 인식이 별반 좋지 않다는 점이다. 정식 이름은 디지털 산업 단지지만 그래도 구로동의 Name Value는 상당히 아쉬운 수준이다. 해서 IT관련 학과 졸업자들은 그 동네 회사들에 취업하기를 꺼리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그 동네 회사들은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또 그렇다고 해서 IT졸업자들이 딱히 갈 곳도 마땅치 않다. 그야말로 구직과 구인의 미스매치가 일어나는 현장이다. 그러나 디지털 단지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스타벅스도 있고, 우아하게 밖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는 카페도 많고, 대형 할인점도 있고 여러 노선의 지하철이 교차하고, 강남보다 아직 길이 덜 막힌다. 그래서 동네 이름만 싹 바꿔 버리면 사람들이 몰려 들 것 같지만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동네 이름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정통부ㆍ산자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생ㆍ직장인ㆍ관광객을 대상으로 디지털 산업단지를 견학하는 프로그램도 만들고 거기로 정시 출퇴근하는 사람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좌절과 성공의 이야기나 드라마가 필요하다. 그 쪽 동네를 배경으로 만화ㆍ게임ㆍ영화도 만들고 TV 광고도 하자는 것이다. 이런 ‘장소의 문제’ 외 또 어떤 문제가 있는가. 소위 IT 산업 종사자들의 노동 강도를 보자. 예비 취업자들의 대부분은 IT 중소기업에 가면 일요일도 없이 자주 밤샘 모드로 살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다. 또 실제로 많은 선배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런 구조의 주요 원인은 첫째,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사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를 착취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서 고급 기술인력을 빼가다 보니 중소기업은 경험 많은 인력의 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IT 대기업, 소위 말해서 SI 업체가 중소 IT업체에 인색하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예를 테면 정부가 발주하는 대형 정보시스템 구축사업을 SI가 수주하면 이를 기술분야별로 다수의 IT 중소기업들에 하도급을 준다. 그런데 하도급 대금은 턱없이 적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IT 사업이라는 게 결국은 인건비를 남기는 사업이기 때문에 중소 IT 업체는 낮은 임금의 엔지니어들을 고용해서 밤을 새워 일을 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구조가 바람직하지 않지만 입찰 참가 자격을 SI 업체로 한정하고 있으니 중소 IT 업체는 수주를 할 수 없고 그래서 아무리 불리한 조건이라 하더라도 SI업체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인 대기업의 중소기업 숙련 인력 빼가기도 이미 어느 정도 고착화된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에는 프로젝트의 전체 그림을 볼 줄 아는 매니저급 엔지니어가 항상 부족하다. 많은 팀장들은 자기의 팀장이 대기업으로 옮겨감에 따라 어느날 아침 아무런 준비없이 팀장이 된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 수행과정에서 많은 혼선이 일어나고 결국 빈번히 밤을 새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IT 중소기업을 둘러 싼 이런 어두운 그늘들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 큰 비용 들이지 않고 해낼 수 있는 것은 정부 발주제도의 개선이다. 정부에서 매년 시행하는 엄청난 규모의 정보화 사업 발주를 한 덩어리로 묶어서 SI에만 입찰 참가자격을 줄 것이 아니라 기술적 내용에 따라 SI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과 중소 IT 솔루션 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으로 분리해서 발주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불공정한 하청구조가 일거에 해소된다. 그러면 중소 IT 업체의 수익창출 능력이 증대되고, 회사가 좋아지고, 숙련 인력은 굳이 대기업으로 가지 않아도 되고, 밤샘작업도 줄어들 것이다. 돈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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