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금융시장이 또다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출구전략을 서두르는 가운데 중국 경제 경착륙이라는 블랙스완(검은 백조)이 실제 출현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블랙스완은 발생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일단 일어나면 엄청난 충격을 초래하는 사건을 말한다. 더구나 아르헨티나와 우크라이나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 태국 정정불안 등 위기를 전염시킬 수 있는 신흥국 자체의 뇌관도 곳곳에 있는 상황이다.
◇연준, 금리인상으로 초점이동=연준이 19일(현지시간) 공개한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 따르면 일부 매파 위원들은 인플레이션 우려, 실질금리 상승 등을 이유로 "올해 중반 이전에 현재 제로 수준인 기준금리를 실질금리의 하단부보다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만으로도 신흥국이 충격을 받고 있는 마당에 비록 소수 의견이지만 연준 내에서 '조기 기준금리 인상' 주장마저 나온 것이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내년 말에나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해왔다. 비록 다수 위원들이 반대해 지난달 FOMC 정책결정에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연준의 초점이 기존의 테이퍼링에서 기준금리 인상 등 본격적인 출구전략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얘기다.
또 회의록에 따르면 대다수 위원들은 회의 때마다 100억달러 규모의 테이퍼링을 단행해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이뤘다. 이날 대표적 비둘기파인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은 총재와 존 윌리엄스 샌프란스시코연은 총재도 "최근의 경기지표 부진에도 연준은 현재의 테이퍼링 속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연준의 출구전략 논의에 불이 붙은 가운데 우크리아나·베네수엘라·태국 등의 정정불안까지 겹치면서 신흥국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가들이 신흥국 자산투매에 나서면서 가뜩이나 취약한 신흥국 금융시장이 동반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중국 경착륙 블랙스완 되나=중국의 경착륙 가능성은 연준의 출구전략보다 신흥국에 더 큰 메가톤급 악재다. 중국 경착륙으로 인한 국제 상품가격 하락은 가뜩이나 취약한 브릭스 등 신흥국을 비롯해 호주 등 수출의존형 국가를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다.
이미 중국의 2월 HSBC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잠정치는 48.3으로 7개월 만에 가장 부진했다. 춘제의 여파로 공장가동이 축소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중국이 구조적인 경기하강 국면에 들어섰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노무라의 지웨이장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경기회복세가 지속적이지 않다"며 "지난해 성장부진에 따른 기저효과에도 불구하고 1·4분기 성장률은 7.5%를 기록하고 2·4분기에는 7.1%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가 최근 총 5,910억달러의 자산을 굴리고 있는 펀드매니저 2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46%는 올해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중국 경제 경착륙과 상품가격 붕괴를 꼽았다. 지난해 12월과 지난달의 응답률은 각각 26%, 37%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