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통화정책] '경기회복 버블화' 우려... 적기 정책대응 시급

경기가 본격적으로 살아나기도 전에 거품이 먼저 재연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기도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최근들어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정부는 다소 무리하더라도 금리인하를 지속적으로 유도해 경기활성화를 도모하겠다고 적극 나서고 있는 가운데 경제안정의 보루인 한국은행마저 여기에 밀려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한채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통화나 물가에 대해 통화당국이 계획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단기적인 경기회복에만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큰 차원에서의 경기회복체 오히려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통화와 외환수급, 물가 등 도처에 잠복한 위험요인을 차분하게 풀어가기 위한 경제정책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통화정책 공백= 한국은행의 가장 큰 역할을 물가와 통화관리. 연초마다 이 목표가 정해지면 한해 실물경제에 대한 자금배분의 밑그림이 그려진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목표가 나오지 않고 있다. 7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안건에도 포함되지도 않았다. 지난해 개정된 중앙은행법에 따르면 연간물가억제 목표 제시는 한은의 권한. 당초 일정도 1월 첫번째 열리는 금통위에서 물가와 통화관리 목표를 함께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날 연간 통화정책방향을 논의조차 못하고 1월계획만 의결했다. 전략도 없이 전술만 가지고 전쟁에 나선 셈이다. 정부의 거시경제 운용방침과 목표가 벌써 나왔는데도 이를 뒷받침할 통화정책이 골간조차 마련되지 않은 것은 물가상승률 억제 목표를 놓고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이 견해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재경부가 3 1%선을 제시한 반면 한은이 구상한 목표치는 4 1%선. 예년같으면 연말경에 합의가 이뤄졌지만 양측의 입장은 아직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날 금통위에 정덕구(鄭德龜) 재경부차관이 이례적으로 열석해 한은과 입장 조율에 나섰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경부와 한은은 다음주중이면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환율이 예상보다 많이 떨어져 재경부 안이 수용될 가능성이 넓어졌다는 것. 그러나 금융계는 외환은행 출자, 한은예산 25% 삭감 문제에서 벌어진 양측의 감정대립이 물가목표 합의를 늦추고 통화목표 설정까지 지연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주무부처와 통화당국간 해묵은 알력이 거시경제목표 설정을 지연시킬 만큼 중요했냐는 질책도 나오고 있다. ◇99년 통화관리 비상= 연간 통화정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순간에도 통화관리 어려움은 날이 가수록 가중되고 있다. 통화관리가 거의 필요치 않았던 지난해와 정반대의 양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은 스스로도 올해 최대과제를 통화팽창 억제로 꼽고 있다. 강형문(姜亨文) 한은 정책기획부장은 『지난해에는 신용경색 때문에 돈을 아무리 많이 풀어도 금융권에서만 돌고 다시 한은으로 환류돼 통화관리가 상대적으로 수월했지만 올해는 통화량 자체에 신경을 집중해야 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올해 통화관리 어려움이 예상되는 것은 무역수지 흑자 누증 국제신용도 회복에 따른 해외자금 유입 가속화 정부재정지출 증가 기업자금 수요 회복 등 팽창요인이 한꺼번에 겹쳐 있기 때문이다. 통화는 이미 많이 풀려있지만 신용경색 현상 때문에 시중유동성 과다가 실감나지 않는 상황. 지난 98년 한해동안 통화안정증권이 무려 23조원 이상 증가하며 지난달 현재 45조6,70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은 통화관리 부담이 얼마나 늘어날 수 있는지 말해준다. 권정현(權正鉉) 한은 금융시장부장은 『예상변수들이 일시에 발생할 경우 물가상승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경우 또다시 통화채를 대량 발행해 유동성을 조절할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알게 모르게 늘어난 통화관리부담이 더욱 가중된다는 얘기다. ◇오락가락 외환수급 정책= 지난 12월중 환율 1,200원대 붕괴가 눈앞에 다가오고 달러공급 우위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해외차입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였다. IMF 8차 지원금 10억2,000만달러, ADB차관 7억달러, IBRD 3차지원금 10억달러 등 27억2,000만달러는 시장의 환율하락세를 더욱 부추겼다. 물론 12월중에 만기도래했던 IMF지원금 28억달러를 상환했지만 달러공급 우위를 돌리지는 못했다. 불과 한달도 못지난 지금, 정부는 반대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도로공사(10억달러), 토지공사(5억달러), 주택공사(3억달러) 등 공기업의 외화차입 일정을 연기하고 올해 만기도래하는 IMF차입금 98억달러를 연내 상환한다는 것. 3월말 만기가 오는 38억달러 규모의 금융권단기외채도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여 조기상환토록 유도할 방침이다. 시중은행들이 6월말까지 한은에 갚아야하는 외채상환지원자금 30억달러도 조기 상환을 권유할 계획이다. 환율 방어를 위해 시장 직접개입을 제외한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성장에너지가 거품으로 꺼진다= 정부가 오락가락하고 있는 사이에 외화가 금융·증권시장에 밀려들어와 시장 불안정성이 커지고 거품도 발생할 조짐이다. 올들어 4일까지 실제 영업일은 하루였음에도 외국인자금이 주식시장에 3억2,000만달러나 유입됐다. 여기에 개미군단과 기관들이 가세해 지난 연말부터 일기 시작한 증시 이상과열이 지속되고 있다. 가뜩이나 금융권의 고수익상품 만기도래 시기가 몰려 있는 상태. 부동산도 일부 지역에서 가격이 뛰고 있다. 실물경제 회복을 수반하지 않는 주식시장 이상 열기과 부동산시장 활성화는 거품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이미 지난 80년대 중반 이후 무역·자본수지 흑자 증가가 증시와 부동산을 통해 거품으로 변질됐던 뼈 아픈 경험이 또 다시 발생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정책 적기대응력 시급= 성장에너지를 거품으로 날리지 않기 위해서는 정책당국간 협조와 일관된 거시경제 정책, 변수에 대한 적기대응력이 요구된다. 특히 통화팽창 우려에 대한 당국간 공감대 형성이 시급하다. 한은의 고위관계자는 『상징적 의미에서라도 극히 제한된 범위의 통화환수를 고려해 봄직한 시기』라고 말했다. 유입되는 외자와 무역수지 흑자를 과거처럼 증시와 부동산으로 날리지 않으려면 기업의 달러를 채무상환에 활용토록 유도하는 방안 등 대책 마련에 고민해 봐야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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