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또 '은행 팔 비트는' 美 금융당국

신용경색 기금 조성에 은행 동원 '官治' 되풀이<br>"도덕적 해이 조장" 비판… 유동성 함정 우려도


미국 금융당국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신용경색 확산을 막기 위해 1,000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키로 하면서 미국식 관치(官治)금융을 재연하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정부가 금융기관의 팔을 비틀어(arm-twisting) 금융시장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것도 문제지만, 당국이 나서서 민간 금융기관의 투자 손실을 보존해 주는 것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미국판 관치금융은 중앙은행이 없던 시절인 지난 20세기초 미국 금융계를 쥐락펴락한 JP모건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1909년 미국 금융시장에 패닉이 발생하자, 피어폰트 모건은 은행단을 구성해 부실 은행에 구제금융을 주어 미국 금융시장을 살린바 있다. JP모건의 시장 독점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1914년 설립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시장이 왜곡될 때마다 관치를 즐겼다. FRB는 거의 10년에 한번 꼴로 돌아오는 금융 위기 시에 예금인출사태(bank run)를 막기 위해 JP모건과 유태계 은행에 손을 벌려 구제금융을 조성하기도 했다. 미 금융당국은 1980년대 들어 지속된 저축대부조합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구제금융 지원 및 FRB의 금리인하 등의 관치를 동원한 바 있다. 미 재무부와 FRB는 1987년 블랙 먼데이가 발생하자 골드만삭스ㆍ살로먼브러더스ㆍ메릴린치 등 주요 투자은행을 동원해 주식을 대량 매수하도록 했고, 그 덕분에 시장의 불안은 조기에 진정됐다. 하지만 시장의 자율적인 기능에 맡기지 않고 금융기관을 강제로 동원했다는 점에서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한국 외채협상 때에도 당시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뉴욕의 대형 은행들의 팔을 비틀어 외채 만기를 연장해주라고 한 것도 일종의 관치다. 1998년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렸을 때 윌리엄 맥도너 뉴욕 FRB 총재는 16개 시중은행장을 불러 36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마련해 LTCM에 긴급 자금을 수혈했다. 이번 서브 프라임 사태 역시 FRB의 단기 유동성 공급과 재할인율 및 금리 인하 조치로도 신용 시장경색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자 결국 금융기관을 동원해 구제금융 기금을 조성하게 된 것이다. 미국식 관치금융은 금리와 통화량을 조정하는 역할 외에도 은행들을 규제하고 따라오게 함으로써 시장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는 '팔 비틀기' 방법이 뉴욕 월가에 먹히는 것은 미 재무부와 FRB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손해라는 것을 금융기관들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미국식 팔 비틀기는 최근 영란은행의 모기지은행 노던 락 구제금융 투입, 독일 분데스방크의 IBK 구제등에서 나타났다. 한국도 2003년 부실의 늪에 허덕이던 LG카드를 구제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구제금융 자금을 마련한 것도 그런 부류다. 감독 당국이 시중은행에 압력을 가해 부실회사를 살리는 것은 양날의 칼이다. 위기를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지만 이는 결국 유동성 공급으로도 경기를 부양시키지 못하는 유동성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지금은 과거와 달리 유동성이 부족해서 시장이 불안정해진 것이 아니라 유동성이 넘쳐 흐르는 가운데 발생한 사태이기 때문에 섣부른 유동성 공급은 자칫 시장을 구하기 보다는 위기를 다시 재연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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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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