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벼랑에 선 한국의 산업자본

“어떻게 국가기간 산업인 정유와 통신부문의 국내 최대 회사가 정확한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외국 펀드의 손에 좌지우지 될 수 있습니까” 국내 최대 정유사이자 SK텔레콤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는 SK㈜의 내년 주총에서 최근 경영진 교체를 선언한 유럽계 소버린자산운용이 승리할 확률이 `60% 이상`이라는 외국계 한 유력증권사 보고서가 발표된 지난 16일 H그룹의 한 부사장이 격앙된 채 뱉은 말이다. 기자는 이 임원이 몸담고 있는 회사가 최근 비슷한 외국 자본에 의해 놀아난 경험이 있어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하지만 `산업자본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는 금융권에서 훨씬 심각했다. 흘려 들을 일이 아니었다. S은행의 한 기업금융 담당 부장은 “제일은행, 외환은행 등이 외국계 자본에 넘어간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산업자본, 특히 국가기간산업이 외국인 손에 흔들리는 것은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금융자본이 비빌 언덕마저 사라진다는 그의 지적은 섬뜩하게 다가왔다. 외국계 은행이 자본이득에 급급해 소비금융에 몰두하며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 마저 외국인에 넘어가면 국내 은행은 설 땅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안일하기 짝이 없다. 국내 주주가 외국인에 비해 경영권 방어에`역차별적`처지에 놓여있다고 항변해도 기존 규제는 풀 수 없다며 냉담하다. 국가 주요산업이 외국기업에 인수될 조짐을 보이면 철저하고 엄격한 심사에 들어가는 미국 등 선진 자본국가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외국 자본의 국내 산업 잠식은 세계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자본의 국적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시대도 지났다. 그러나 어렵게 쌓은 우리의 국부가 어이없이 유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수십 년을 키워온 기업의 경영권을 하루 아침에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빼앗기는 일도 없어야 한다. “2003년 겨울, 한국 산업자본의 단상이 처량하기 그지 없다”는 재계의 목소리를 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손철 산업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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