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철 이른 동문회가 여기저기서 열린다. 불경기 탓으로 돌리기에는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 너무 많고, 그 이유가 상당 부분 조기 퇴직과 관련이 있어 고용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실업은 통계에 잡히는 양적 측면도 문제지만 질적으로도 대단히 악화돼 있다. 40~50대의 사오정 퇴출은 그렇다 치더라도 30대가 경제ㆍ사회적으로 충분한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채 실직한다는 것은 엄청난 후유증을 동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일까. 요즘에는 현모양처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남편 뒷바라지에 부족함이 없고 아이들 잘 키우는 것이 주요 과제였지만 최근에는 집안일에 다소 소홀하더라도 직장을 다니거나 부업을 가진 여성, 그리고 재테크에 능력을 보이는 여성들이 현모양처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 우울한 시대의 자화상이다.
그렇다고 기업의 해고에 쌍심지를 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해고가 어렵게 되면 기업은 신규 채용을 축소하고 이때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 청년 구직자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최근 고용시장은 기존 직장인의 직업 안정성과 청년취업이 뚜렷하게 역(逆)의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산업이 공동화되면서 고용흡수력은 더욱 떨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업교육, 취업알선,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이 시스템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경기를 활성화시켜 고용시장의 파이 자체를 키워야 하며 이를 선도해갈 수 있는 경제 주체는 기업이다. 어쩌면 기업은 존재 자체로 이미 사회에 공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기업들은 지금 정치자금 문제로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으며 이는 곧바로 금융시장 불안으로 전이되고 있다. 도덕적 기반 없이 더 이상의 성장은 없다는 점을 전제하면 차제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경제는 2류,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는 말이 한국의 현주소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에서 정치자금 수사가 기업에만 집중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정치는 선거 때마다 손을 내밀고 행정은 공정경쟁을 앞세워 규제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상황, 특히 대기업의 이미지를 `못된 자본가 집단`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는 고용도 미래도 없다. 실패한 경제에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정구영(국제부 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