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불효 이제라도 갚을께요""어머니 두명이에요. 어머니."
26일 가족을 만나러 서울에 온 북측 이산가족 정두명(67ㆍ공훈예술가)씨는 90세를 눈앞에 둔 어머니 김인순(89ㆍ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씨의 가슴에 파묻혀 어린아이마냥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실로 50년을 넘게 가슴에 담아온 보고픔의 한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순간이었다.
어머니 김씨는 이날 반세기 전 앳된 소년에서 할아버지가 돼 돌아온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아이고 이 놈아 왜 이제야 왔느냐"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씨도 어머니를 쳐다보며 "어머니도 조금 늙으셨을 뿐이지 꿈에서 그리던 얼굴 그대로다"며 "50년간 끼친 불효를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갚아가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또 정씨의 동생 두환(60)씨는 "어릴 적 형과 함께 한강에서 고기를 잡던 기억이 생각난다"며 "당시 경기중학에 다니던 형은 음악적 소질이 뛰어나 학교에서 밴드부 활동을 했었다"며 형과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두환씨가 형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6.25전쟁 발발 직후였다. 당시 서울은 북한의 점령하에 있었고 당시 중학생이던 형 두명씨는 서울 마포구 북아현동의 집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이내 북한군들이 들이 닥쳤고 형은 어머니와 동생들을 뒤로 한 채 전쟁터로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
동생 두호(55ㆍ해외거주)씨도 "전쟁터로 끌려간 형이 모두들 죽은 것으로 여겼는데 이렇게 눈앞에 서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며 "50년 만에 돌아온 형을 만나기 위해 외국에서 살고 있는 3명의 동생들도 한걸음에 달려왔다"며 기뻐했다.
정씨는 현재 취주악 작곡과 편곡으로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는 북한 취주악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정씨는 특히 지난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때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영결식에서 연주해 유명세를 탔다.
한영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