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달간 코스닥 시장은 그야말로 `웹젠 천하`였다.
웹젠이 공모주 청약을 개시한 지난달 14일, 무려 3조3,000억원의 뭉칫돈이 한꺼번에 몰린 것은 화려한 날개짓의 서막에 불과했다. 등록 후 6일 연속 상한가로 치달으며 단숨에 주가 12만5,000원의 고지에 올라서는 동안 침체에 빠져있던 코스닥 시장은 인터넷주를 중심으로 힘찬 상승랠리에 돌입했다.
`거품 아니냐`는 경계론도 고개를 들었지만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 온라인게임 `뮤`의 상용화 1년 만에 매출 255억원, 순이익 152억원을 거둔 웹젠을 보며 `리니지 신화`를 떠올린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또다른 `고졸 신화`의 주인공 김남주(32) 사장이 있었다.
“증권 시황은 쳐다보지 않습니다. 관계자들이 다 보고 있는데 저까지 보면 시간낭비 아닙니까.”
미국 LA의 `E3` 게임쇼 현장에서 공모금액 3조3,000억원의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김 사장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다. 코스닥 황제주의 기수라는 자부심보다는 무겁게 눌러오는 책임감이 더 커 보였다.
“주위에서 돈 많이 벌었다고 부러워하지만 월급쟁이 생활에서 달라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제 지분은 웹젠과 CEO 김남주의 미래 가치일 뿐, 팔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잘 하는 거라곤 미술 밖에 없었던 소년 김남주의 꿈은 만화영화 감독, 혹은 문방구 주인이었다. 가장 주목받는 게임회사의 개발자이자 CEO가 된 지금도 게임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그다.
요즘 김 사장을 괴롭히는 유일한 난제는 뮤의 차기작에 대한 질문이다. 뮤의 성장세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르는데 차기작에 대한 비전이 부재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초기 기획 단계인데, 무엇보다 기획이 가장 중요한 만큼 2~3년이 걸려도 확실하게 할 작정입니다. 기획만 된다면 개발은 1년 안에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뮤가 아직 50%밖에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제품의 생명력을 단축하면서까지 차기작을 서두를 생각은 없습니다.”
김 사장은 뮤가 벌써 5년째 롱런하고 있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와 비슷한 궤도를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차이점은 2D 그래픽 기반인 리니지의 장벽을 뮤는 3D로 돌파했고, 3D 다음에 올 4D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차기작에 대한 위험부담을 분산시키는 차원에서 김 사장은 조만간 웹보드게임 사이트를 오픈할 계획이다. 이미 한게임, 넷마블을 비롯해 크고 작은 선발주자들이 많지만 성장이 꾸준한 시장인만큼 큰 욕심없이 도전해 볼 작정이다.
“보드게임은 비디오게임보다는 진입장벽이 낮고 위험부담도 적습니다. 당장 몇 등 하겠다는 욕심은 없지만 기대 이상으로 잘 진행되고 있어 만족스럽습니다.”
차기작 부담 분산과 막대한 순이익의 재투자 차원에서 웹젠이 진행 중인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바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으로 유명한 미국 블리자드가 처음 제작한 온라인게임으로, 지난 수개월간 국내 판권을 둘러싸고 주요 게임업체들 사이에 치열한 물밑경쟁이 진행돼 왔다.
웹젠과 넷마블, 한빛소프트 등 3개사가 경합을 벌이는 가운데 최근 `워크래프트3` 확장팩의 판권을 따낸 손오공이 중요 변수로 떠오른 상황이다.
“가능성은 여전히 50대 50이라고 생각합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가져오려는 이유는 수익도 수익이지만 온라인게임에 접목된 그들의 풍부한 노하우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판권확보에 실패한다면 차기작 개발이 그만큼 빨라지겠죠.”
그는 한국 온라인게임이 세계적으로도 가장 앞서 있는 만큼 지금이 고삐를 더 바짝 죄어야 할 시기라고 주장한다. 블리자드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온라인게임 시장이 `돈이 된다`고 판단하면 미국ㆍ일본 등 게임선진국의 거대한 자본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온라인게임의 특성상 물량 공세만으로 승부가 갈리지는 않겠지만 방심할 순 없죠. 하루빨리 해외시장을 선점해 `온라인게임=코리아`라는 인식을 심어놓아야 합니다.”
코스닥 등록과 함께 순식간에 300억원대 벤처 부호로 떠오른 그에게 중매쟁이의 `러브콜`은 그동안 얼마나 들어왔을까.
“없습니다. 단 한 번도요. 코스닥에 등록하고 `장가가기 더 힘들어졌다`고 한탄했는데 정말 그럴 것 같아 걱정입니다. 어디 좋은 여자 없을까요.”
■ 경영철학과 스타일
김남주 사장은 굳이 분류하자면 `덕장` 형에 가깝다. 칭찬에 인색하지 않고 개개인의 자율을 최대한 인정해 줘서 직원들은 그를 형처럼 믿고 따른다.
일이 잔뜩 밀려있는 중에도 고민상담을 위해 사장실을 찾는 직원들에게 몇시간이고 시간을 내 준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의 경영철학을 감안하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는 직원을 채용할 때도 학력이나 경력 등은 별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가 세운 채용면접 최장시간 기록은 무려 5시간. 이것저것 살아온 얘기를 들으며 웹젠에 잘 융화될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는 게 거의 유일한 기준이다.
그러나 그의 친화력 뒤에는 신중한 판단과 일단 결정되고 나면 밀어붙이는 추진력, 그리고 자기만의 소신이 숨어있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지난 2001년 말 뮤를 유료화할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후발 게임이니까 저가에 서비스하자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친 사건은 지금도 직원들의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게임의 퀄리티에 자신이 있는데 왜 싸게 내놓아야 하나”라는 김 사장의 강력한 주장에 월 2만7,000원이라는 고가 정책을 밀어붙였고, 이는 정확히 주효했다.
뮤의 차기작에 대한 의문이 쏟아지자 일부에서 내놓은 게임 퍼블리싱 건의도 그는 단호히 거부했다. “적당히 동시접속자 1~2만명 유지할 만한 게임은 당장 6개월 만에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약력
▲71년 서울 출생
▲90년 서울 예림미술고 졸업?
▲92년 ㈜원엔지니어링 입사
▲93년 캐드하우스 기술지원부
▲94년 미리내소프트 IZMIR 슈팅게임 개발(기획ㆍ그래픽 총괄)
▲97~99년 3D게임 기획 및 개발
▲2000년 5월 ㈜웹젠 그래픽담당 개발이사
▲2002년 9월~현재 ㈜웹젠 대표이사
<김문섭기자 cloone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