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골프,농지,그리고 개발의 운명

◎미래로 행진중인 베트남에서 농부들이 농지를 모래구덩이로 바꾸려는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경찰이 토지를 수용하러왔을때 「토다」촌 농부들은 강력한 상징, 즉 호치민에 호소했다. 수백명의 농민들은 50년전 식민지시대 지주들에게 투쟁할 것을 선동했던 공산 베트남 국부의 사진을 들고 논위를 행진했다. 이번에 농민들이 떠들게 된것은 한 한국기업이 논에 골프장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추진중이고 그들의 정부가 이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곤봉, 전기방망이와 최루탄으로 무장한 경찰은 신정전날밤 들어왔으나 돌을 던지고 트럭, 승용차 및 구급차의 불을 켜며 완강하게 저항하는 농민들을 진압치못했다. 한 경찰관은 『지금은 호치민의 시대가 아니다』고 외쳤다. 『지금은 보 반 키에트의 시대다』 이는 개혁성향의 키에트 총리가 높이 평가된 비교는 아니다. 그러나 농촌의 쟁기를 현대화된 산업경제의 조립라인으로 전환시켜려는 베트남의 계획은 점차 토지분규로 차질을 받고있다. 인구의 70%가 넘는 농민들은 경제발전의 주요 수혜자가 되고있다. 그러나 빈민층의 90%는 여전히 농촌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농촌인구는 이미 포화상태인 도시에 몰려들고 있어 도시인구는 매년 약 7%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을 위해 베트남은 대규모 농토를 공장, 고속도로 및 주택으로 바꿔야한다. 지난 10년간 베트남정부는 농토가 연간 1%씩 사라졌다고 추산한다. 이는 가장 의욕적인 개발계획의 첫삽을 아직 뜨기 전의 통계다. 예를 들어 지난해말 하노이는 토다촌에서 멀지않은 곳에 21억1천만달러가 투자되는 교외도시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승인했다. 호치민시 교외에서는 2억4천2백만달러가 소요되는 위성도시 사이곤 사우스의 건설이 최근 시작됐다. 대학 주택 쇼핑가가 들어서는 이 도시는 3천3백㏊의 농지를 집어삼킨다. 수백명의 농민들이 토지 상실에 항의, 공사가 수개월간 지연되고 있다. 하노이의 프레드리히 에버트 재단 사무소 울리히 골라스진스키 대표는 『그래 당신은 농부다. 토지의 대가로 수백달러를 받을 것이다. 그후는 어떻게되나. 당신은 어디로 가나』고 묻는다. 하노이 근교 토다마을의 골프장 개발 건설업체 관리인은 『그들은 캐디가 될 수 있다』고 즉각 응답한다. 이 대답이 1천8백명 농민들에게 희망을 줄수는 없다. 그들 대부분은 못배우고 기술도 없다. 『그들은 우리의 관개시설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땅은 매우 황폐해졌읍니다』 맨발로 몇 알의 시들은 고구마를 캐내려고 단단한 진흙더미를 파헤치고 있던 44세의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벼와 채소를 재배해 일년에 약 1백달러를 벌고 있다. 개발회사직원들은 아마 이런 빈약한 벌이때문에 농부들을 쉽게 매수할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부락민들은 반항할수록 득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지난해 5월 농부들의 벼모판을 갈아엎기 위해 군부대로부터 일꾼들이 파견됐다. 이 부대는 베트남전당시 호치민통로를 개척했던 바로 그 부대였다. 부락사람들은 각 구획마다 2백달러를 지불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부락민들은 그들을 대신해 지방정부가 협상해서 나온 이 제안을 수용하기 보다 군 부대 일꾼들과 싸웠다. 이 과정에서 4명이 체포됐으며 이중 최소한 1명은 아직까지 수감중이다. 또 흥분한 부락사람들을 피해 달아나다 연못에 빠진 여자 일꾼은 사망했다. 이 사건 후 수개월동안 한국의 대우그룹과 지역 회사간의 합작인 개발회사는 각 농민에 대해 최소한 6백50달러를 지불한다는데 동의했다. 그 돈은 원래 다른 개선사업을 위한 자금으로 부락관리들에게 제공됐었다. 『우리는 부락관리들이 우리 몫을 착복하지 않고 있음을 확신하기를 원한다』고 한 농민은 말했다. 부락민들이 농장의 각 구획을 자기 소유로 생각하는 경향은 분쟁의 근본이유다. 베트남에서 개인토지소유는 불법이다. 베트남정부는 8년전 참담한 실패로 끝난 집단농장실험을 중단했으며 「사오」라고 부르는 개인별 토지구획을 세대별로 분배해주었다. 그리고 3년후에는 세대별 장기 토지사용권 부여 등을 포함한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 권리는 실제로 많은 제약이 있었다. 소유의식은 최근의 이같은 정부의 개혁시도보다 뿌리가 더 깊다. 토다에서 가족이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느냐는 질문에 한 농부는 『4백년이 넘었다』고 대답한다. 실제 공산주의 치하에서도 이들은 조상들이 수세대에 걸쳐 일궈왔던 땅에서 농사를 계속해서 지었다. 고구마를 캐고 있는 이 여인 소유의 「사오」에는 가족의 땅임을 나타내는 선조들의 무덤과 비석들이 서있어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어왔음을 알 수 있다. 도시에서도 재산권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한 주민은 점유중인 주택에 대해 부재지주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판결이 나오자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법률 개혁에 대해 베트남에서 고문역할을 하고 있는 한 외국국적 변호사는 『이 모든 것은 시민사회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을 정치적인 토론장으로 이끌어 낼 수가 없다. 조직이나 협회를 구성할 수가 없다. 결국 폭력이 발생한다. 폭력외에 무엇에 의존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토다 주민들은 물러서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이번달에 김우중 대우회장은 조용히 하노이를 방문, 대우와 함께 골프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합작파트너 책임자인 하노이 시장을 만났다. 이번 분규와 관련 한 하노이 관리는 『우리는 이번 일로 외국 투자자에게 나쁜 인상을 주고싶지 않다』라고 말한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베트남내 최대 투자기업인 대우에 특히 민감하다. 정부의 이런 태도가 토다 주민들이 회의적인 자세를 취하는 이유중 하나다. 대우측 현지 파트너인 하노이전자는 하노이 시정부가 소유하고 있으며 시정부는 농부들에 대한 보상을 포함, 골프사업에 관한 사법권을 가지고 있다. 대우와 현지 파트너는 타협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합작파트너측의 당 호앙 칸 부사장은 『우리는 아마 그들에게 더 많은 돈을 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그는 이번 사업이 골프장이나 관련 시설, 또는 건설작업에서 일자리를 원하는 주민에게 취업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다. 칸은 임금이 한달에 50달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농부들은 항상 더 많은 돈을 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많은 돈을 받으면 그들은 카지노, 카드놀이, 노래방 등에 탕진할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호치민 전사들을 상대했던 프랑스 식민주의자들과 미국 군부가 절감했듯이 베트남 농부들은 일단 결심하면 대단한 사람들이다. 토다의 한 주민은 『우리는 필요하다면 우리의 토지를 사수할 것이다. 토지는 우리가 가진 전부다』고 말한다.<팀 래리머 기자/하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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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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