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TV,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TV전쟁 막 올랐다 전세계 통신업계에 거센 가격파괴 바람 지난 9월4일. 프랑스 파리 에펠탑 근처 티모텔 로비에 놓인 신문을 보던 중 한 귀퉁이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를 발견했다. 프랑스 3위의 통신사업자인 일리어드(Iliad)가 ‘월 29.99유로(약 3만8,900원)에 광랜과 인터넷전화(VoIP), IPTV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의 하나로텔레콤이 초고속인터넷ㆍ전화ㆍ하나TV를 묶어 선보인 ‘하나세트(3만2,000원)’와 비교해볼 때 가격에서는 약간 비쌌지만 서비스 질에서는 훨씬 앞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터넷 속도는 100Mbps로 하나세트의 10Mbps를 훨씬 앞섰고 IPTV도 고화질(HD)급으로 두 대까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인터넷과 하나TV를 설치할 때 지불하는 모뎀 임대료도 없다. 인터넷이 없으면 못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매우 매혹적인 상품임에 틀림없었다. ◇세계는 지금 ‘가격파괴 중’=일리어드의 파격적인 요금제는 최근 프랑스에서 일고 있는 통신업계 간 경쟁이 가격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 초까지만 해도 44유로에 달했던 서비스 요금은 4월 뇌프세게텔(Neuf Cegetel)에 의해 29.90유로까지 낮아졌다. 가격파괴는 프랑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인접 국가인 독일과 네덜란드는 물론 미국ㆍ일본 등 IPTV를 서비스하는 국가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네덜란드의 경우 한때 15유로에 달했던 IPTV 시청료를 KPN텔레콤이 9.9유로까지 떨어뜨렸으며 미국의 버라이즌 역시 200개 채널을 월 57달러의 결합상품에 포함해 제공하고 있다. 케이블TV를 위주로 한 결합상품 시청료가 100달러 안팎인 데 비하면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아시아에서도 IPTV는 방송ㆍ통신요금 절감을 이끄는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홍콩에서 10년 넘게 무역사업을 하던 이찬씨는 대부분의 홍콩 시민들처럼 PCCW에서 제공하는 IPTV 나우TV 서비스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가 초고속인터넷과 IPTV에 지불하는 통신료는 한 달에 10달러에 불과하다. 설치비와 모뎀비 역시 무료. 인터넷 속도가 우리나라에 비해 상당히 느리고 1년 동안 해지할 수도 없지만 3만원이 훨씬 넘는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이러한 단점을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통신업계 “가격은 나의 힘”=통신 업계가 지구촌 곳곳에서 가격전쟁을 벌이는 것은 이미 방송시장을 선점한 막강한 경쟁업계를 대상으로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리서치 기관인 포인트토픽사의 분석에 따르면 2006년 말 현재 전세계 IPTV 가입자 수는 295만명으로 300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한국 케이블TV 가입자 수(1,300만명)의 4분의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방송시장은 이미 공중파ㆍ케이블ㆍ위성TV 등이 선점한 상태. 특히 시청자들이 볼 때 IPTV는 훌륭한 기술을 가진 ‘혁신적인 미디어’라기보다 ‘네번째로 등장한 TV매체’에 불과하다. 미국 컴캐스트의 마크 코블리츠 전무가 “IPTV는 제4의 방송사업자이며 케이블TV의 아류일 뿐”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유선이나 위성방송 대부분이 콘텐츠를 영화나 공중파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요금경쟁을 격화시키는 요인이다. 서비스 업체 간 콘텐츠 차별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은 요금인하의 파괴력을 한층 높이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사실 통신 업계의 승부수 역시 가격 외에는 별로 없다. IPTV 서비스는 막강한 인프라와 자금력을 보유한 거대 통신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지만 이들의 방송경험은 일천하다. 따라서 통신 업계로서는 가장 자신 있는 전략인 요금인하를 내세울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동통신 전쟁은 통신 업계에서 주도하는 경쟁의 흐름이 가격파괴 위주로 나갈 것이라는 전망을 더욱 확산시킨다. ◇케이블TV “조만간 가격전쟁 합류 불가피”=소비자 입장에서 비용부담이 줄어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00달러에 보던 방송을 하루아침에 절반 값인 50달러에 보여주겠다는데 마다할 가입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케이블TV 업계가 긴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직은 IPTV가 ‘포대기에 싸인 아기’에 불과하지만 조만간 그들의 생존기반을 위협하는 강력한 라이벌로 성장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업계 전반에 흐르고 있다. 특히 통신 업계가 주도하는 가격경쟁이 케이블TV 가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nsadude’라는 아이디를 가진 미국의 네티즌은 최근 통신업계의 잇따른 가격인하를 “경쟁의 결과물”이라고 평가하면서 “우리에게는 경쟁도 없고 그 결과 오래도록 비싸고 느린 서비스만 받아왔다”고 비판했다. 미국 케이블TV협회(NCTA)의 스티브 에포트 부회장은 “통신업계의 가격적인 측면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향후 수 년 내 IPTV 서비스가 본격화되고 마케팅 경쟁이 붙게 되면 가격인하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별취재반 IPTV·전화·인터넷 결합상품 통신·방송업계 경쟁 촉매제 IPTV 도입이 가격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 근본적인 배경은 IPTV가 통신ㆍ방송업계 간 경쟁의 촉매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산업과 방송산업의 역사는 반세기도 넘는다. 그만큼 시장이 굳어질 대로 굳어졌다는 의미다. 자사의 사업영역에 안주하다 보면 경쟁도 없고 새로운 서비스 개발도 없다. 결국 피해는 소비자들이 볼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IPTV를 먼저 도입한 나라들도 이렇게 굳어진 시장에 새로운 경쟁을 유발하기 위해 과감히 이를 도입했다. IPTV는 독자적인 서비스뿐 아니라 전화ㆍ인터넷을 묶은 3중결합상품(TPSㆍTriple Play Service)으로 더욱 높은 가치를 지닌다. 인터넷 회선 하나로 초고속인터넷은 물론 TV와 전화까지 서비스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동일한 비용을 투자해 보다 많은 상품을 소비자에게 내놓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가입자들도 IPTV만 시청하기보다는 결합상품으로 이용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미국 AT&T는 아예 IPTV 단독상품을 출시하지 않고 결합상품으로만 서비스하고 있으며 버라이즌도 IPTV 서비스 가입자 중 80%가 전화ㆍ인터넷ㆍIPTV를 모두 이용하는 TPS 가입자이고 IPTV만 단독으로 보는 가입자는 1%도 되지 않는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IPTV를 내세운 통신사업자들이 케이블TV 사업자와 경쟁관계를 형성해 유선통신과 방송시장 모두에서 새로운 서비스 개발과 요금인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케이블TV 업체와 통신 업체의 경쟁구도를 만들려는 미국과 달리 유럽은 통신사업자 간 경쟁을 통해 요금인하를 유도한다는 입장이다. 프랑스의 경우 후발사업자인 프리텔레콤이 지난 2003년 12월 프랑스에서는 처음으로 IPTV를 시작하면서 프랑스텔레콤과 경쟁구도를 형성했다. 과감한 요금인하 정책과 주요 방송사와의 잇따른 콘텐츠 제휴로 프리텔레콤은 적어도 IPTV 시장에서만큼은 무시 못할 강자로 자리잡았다는 것이 프랑스 통신 업계의 평가다. 프리텔레콤은 기본적인 TPS를 월 29.90유로에 제공하면서 최고 100Mbps급 인터넷까지 지원하는 것은 물론 인터넷전화(VoIP) 요금도 가입자 간 무료통화에 국제전화를 무료로 걸 수 있는 국가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등 IPTV와 전화ㆍ인터넷 모두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아직 프랑스에서 IPTV 콘텐츠 경쟁력은 '캐널+' 등 위성방송사업자에 비하면 한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초고속인터넷과 전화 등에 가입하기 위해 IPTV 서비스를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프랑스 통신위원회(ARCEP)의 설명이다. PCCW가 방송과 인터넷ㆍ통신 등을 장악해 경쟁체제를 기대할 수 없는 홍콩에서도 TPS 도입으로 통신요금이 크게 떨어졌다. PCCW는 IPTV 도입 이전 종량제 기반의 인터넷 요금정책을 유지했지만 대용량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인터넷으로 보내주는 IPTV 서비스를 시작한 후에는 종량제를 더 이상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정액제 기반으로 요금정책이 바뀌면서 가입자들의 실제 요금부담은 크게 떨어졌다. 홍콩에서 7년째 거주하는 박규남씨는 "인터넷TV의 서비스 자체는 기존 케이블 방송과 큰 차이가 없다"면서도 "통신요금 부담이 큰 폭으로 떨어져 인터넷TV에 가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송영규차장대우(팀장)ㆍ권경희ㆍ최광ㆍ황정원ㆍ임지훈(정보산업부)ㆍ이상훈기자(뉴미디어부) 입력시간 : 2007/09/27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