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盧] [기고/6월 24일]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

이상돈(중앙대교수·법학과)

42명의 전직 대통령을 가진 미국에서는 “누가 훌륭한 대통령이었나”를 묻는 여론 조사가 자주 이뤄져서 호사가(好事家)의 화제가 되곤 한다. 지난 2007년 2월 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들은 에이브러햄 링컨, 로널드 레이건, 존 F 케네디, 빌 클린턴, 그리고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순서로 위대한 대통령으로 뽑았다. 2005년 5월 워싱턴 대학의 조사에 의하면 그 순서는 링컨, 레이건, 프랭클린 루스벨트, 케네디, 클린턴이었다. 2000년 2월 ABC 방송 조사에 의하면 링컨, 케네디, 프랭클린 루스벨트, 레이건, 조지 워싱턴의 순서였다. 이런 조사는 1,000명 내외의 일반인을 상대로 한 것이다. 높은 호감도 보인 盧 전대통령
학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는 일반인을 상대로 한 조사와는 약간 다른 면모를 보인다. 학자들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 프랭클린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훌륭한 대통령으로 뽑는다. 1960년대 이후 동시대의 대통령으로서는 케네디와 레이건을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한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그리고 레이건은 임기가 끝나고 나서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트루먼은 재직 당시 인기가 매우 낮았고, 아이젠하워는 인기는 높았지만 “골프나 치고 아무것도 안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6월15일 전국의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역대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해서 발표했다. 이에 의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38.1%, 노무현 전 대통령이 36.0%로 높게 나타났고, 이어서 김대중 10.7%, 이승만 3.6%, 전두환 3.2%, 김영삼 1.4%, 노태우 0.6%의 순서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단숨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같은 동급수준으로 올라선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지역적으로는 경북-대구와 충청, 연령으로는 40대 이상에서 높게 나타났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수도권 20~30대에서 높게 나타났다. 이 조사는 미국처럼 ‘위대한 대통령’을 물은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대통령’을 물은 것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거의 20년 동안 대통령으로 재직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와 동급이라는 사실은 범상치 않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이렇게 낮아진 것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심각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20~30대 사이에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조사는 노 전 대통령의 사망을 ‘형사피의자의 자살’로 치부하고 싶어하는 일부 보수층의 기대를 무산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런 분위기가 얼마나 오래갈지, 또 이런 여론이 닥쳐올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964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이런 궁금점을 푸는 데 다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인 린든 존슨 대통령은 공화당 후보인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승리했다. 골드워터의 참패를 보고 “공화당이 재기할 수 있을까”하고 걱정하는 평론가도 많았다.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데는 비극적으로 사망한 존 F 케네디에 대한 추모가 큰 역할을 했다. 암살당한 케네디는 순교자처럼 여겨졌고 존슨은 그의 유업(遺業)을 이어갈 것처럼 행세했다. 향후 선거에 영향 미칠수도
케네디가 1963년 11월에 텍사스를 방문한 것은 당시 남부 주(州)의 정서가 심상치 않아서 그것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케네디 측은 뉴욕 지사이던 넬슨 록펠러가 공화당 후보로 나오면 쉽게 이길 수 있지만 남서부 출신인 골드워터가 후보로 나오면 남부와 서부가 공화당을 지지하게 돼 쉽지 않은 게임이 될 것이라 우려했다. 그런데 케네디가 암살당하자 골드워터는 케네디를 비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거운동을 해야만 했고 존슨은 케네디의 후광(後光)을 등에 업고 낙승(樂勝)할 수 있었다. 케네디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성격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다. 하지만 전직이든 현직이든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은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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