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한국을 이끄는 50인의 경영인]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

2010년 톱5목표 글로벌경영 진두지휘<br>제품·서비스 차별화로 승부 독자엔진 기술 확보에 전력


김 부회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서 의사 결정 때까지 최대한 많은 의견을 들으려는 신중한 스타일이지만 일단 큰 결정이 이루어지면 한치의 빈틈도 없이 일을 추진해 정몽구 회장의 ‘글로벌 경영’을 가장 잘 뒷받침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동진 부회장이 현대차 경영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 이 때는 정몽구회장이 현대차의 경영비전으로 오는 2010년까지 ‘글로벌 톱5 달성’을 선언했던 시기다. 그 해 11월 김 부회장은 도쿄 모터쇼에서 정회장의 글로벌 톱 5를 구체화한 ‘글로벌 4대 전략’을 발표한다. 수출시장 개척에 사활을 걸고 세계 각지에 현지공장 건설과 권역별 전략차종 개발 등을 통해 세계 일류 자동차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현대차는 이후 중국1공장(2002년), 미국공장(2005년), 인도2공장(2007년), 중국2공장(2008년) 을 차례로 완공시켰다. 현재 체코 공장 및 러시아 공장 건설을 차질 없이 추진하며 현대차의 글로벌경영을 완성시켜가고 있다. 김 부회장이 현대차 대표이사를 맡은 이후 경영환경이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2004년 말 현대차가 최고 이익을 계속 경신하고 있을 때 그는 비상경영을 선포한 바 있다. 임원들에게 골프 자제령을 내리고 에너지비용 절감, 해외출장 최소화 등 고강도 긴축정책을 펼쳐 나갔다. 다소 의아스럽고 갑작스럽게 여겨졌던 이러한 결정은 이후 전개될 경영환경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예측에 기반한 것이었다. 실제로 2005년 연초부터 기름값은 폭등하기 시작했고 환율은 떨어지는 등 경영환경이 급속하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달러화 약세로 인한 원화가치 상승과 엔화가치 하락으로 인해 일본메이커들의 가격경쟁력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해외 판매 비중이 75% 이상인 현대차는 비상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현대차는 이러한 환경변화를 사전에 인식하고 한 박자 빠르게 대응함으로써 영향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김 부회장은 2007년 초에도 다시 한번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전사적인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추진한다. 그 때는 막 서브-프라임에 따른 미국경제와 고유가로 인한 자동차산업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을 때였다. 결과적으로 2007년 내내 미국 경제는 휘청거렸고 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자동차시장을 강타했다. 사전대응 태세를 갖춘 현대차는 오히려 미국 경기불황과 고유가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이 시기에 사상 최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동시에 10년 만에 노사협상 무분규 타결을 이끌어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 같은 결과는 김 부회장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 내부의 평가다. 매일 아침 6시 30분, 그의 첫 업무는 기획실, 연구소 등 사내 각 부문에서 올린 보고서를 읽어보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에게는 모든 메이커가 경쟁상대다. 우리가 성장하면 할수록 선진메이커와 선의의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만의 창의적이고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김 부장의 이 같은 발언은 현대차 경쟁전략의 핵심이기도 하다. 김 부회장은 항상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소형차에서 고급 SUV까지 현대의 모든 차종에 독자엔진을 장착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다는 목표 아래 연구개발부문에 매출액의 4% 이상을 투자해 왔다. 친환경기술의 대표격인 하이브리드 차종개발에도 힘써 2009년에는 현대차도 하이브리드 시장에서 도요타 등 선진메이커와 본격적으로 경쟁할 수 있게 된다. 김 부회장은 8년째 현대차의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 그의 역할이 더욱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몽구 회장을 보필하며 추진한 글로벌경영과 품질경영은 어느덧 완성단계에 이르렀지만 세계 일류 회사들과 비교하면 아직 걸어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 지금까지 김 부회장은 현대자동차를 국내기업에서 글로벌기업으로 키우는데 일조했다. 미래에는 현대자동차를 수익 좋은 회사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 모든 고객들이 열망하는 기업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것이 김 부회장의 과제다.
김동진 부회장은 김동진 부회장은 공학도 출신으로 CEO 자리에 올랐다. 197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내 방산부문 연구원으로 사회에 진출, 1년 후 방산부문이 국방과학연구소(ADD)로 통합되면서 ADD에서 근무하게 된다. 현대그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8년. 현대중공업 중기사업본부에 입사해 한국형전차(K1) 개발 실무책임을 맡아 양산까지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로 1985년 정부로부터 보국훈장을 받았다. 1989년에는 현대정공 기술연구소장으로 근무하면서 갤로퍼 개발에 착수, 그 때부터 자동차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1950년 진주 출생 ▦1972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197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방산부문 연구원 ▦1978년 현대중공업 중기사업본부 ▦1989년 현대정공 기술연구소장 ▦1998년 현대우주항공 대표이사 ▦2001년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경영원칙 ▦ 글로벌경영 -글로벌 초일류 기업 실현 목표 ▦ 위기관리경영 -경영환경 변화에 대한 사전대처 ▦ 제품·기술 중시경영 -고객이 원하는 신차개발 전력 ▦ 브랜드경영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CEO의 편지'로 따뜻한 마음 전해

직원들 생일·결혼기념일·입사 기념일 챙겨
'CEO의 편지'. 김동진 부회장은 직원들의 작은 일에도 따뜻한 마음의 선물을 잊지 않는다. 직원들의 생일, 결혼기념일, 입사 기념일 등에 맞춰 축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또 시인으로 등단한 사원이나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직원 등에게도 친필 축하편지를 보내곤 한다. 이렇게 김 부회장은 세심한 배려로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있다. 이런 다정다감한 김 부회장이지만 겉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그의 성품은 선이 굵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호흡을 맞추는데 최적의 조합이라는 평을 듣는다. 정 회장이 큰 그림을 그리고 가장 시급하면서 핵심적인 부문의 일을 직접 챙기는 스타일이라면, 김 부회장은 각 부문의 구체적인 실행전략을 세우고 추진 결과를 꼼꼼하게 챙기는 스타일이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성공신화를 이어온 것은, 품질경영과 글로벌경영이라는 정몽구 회장의 경영철학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현장에서 세심하게 구현해온 김 부회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어려서부터 과학자와 발명가를 희망했다는 김 부회장은 수재들이 흔히 정치인이나 법조인을 꿈꾸던 시절, 과학 및 공학도의 길을 걸으며 산업화 과정에서 과학입국의 꿈을 실현해 온 주역 중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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