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5·31 지방선거] 투표현장 이모저모

화교들 첫 투표… "한세기 설움 씻었다" <br>盧대통령 친형 건평씨 선거권 없어 투표 못해<br>총 6표 기표 등 바뀐 선거방식에 무효표 속출 <br>"정당 참관인이 주민안내 왜하나" 항의 소동도

충남 공주의 한 할머니가 몸이 불편한데도 장기면의 한 투표소를 찾은 후 청년의 도움을 받아 투표함에 표를 넣으며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공주=연합뉴스

지방선거일인 31일 오전 충남 논산시 연산면 양지서당에서 어린 제자들이 의관을 정제하고 투표하러 가는 유복엽(앞쪽) 큰 훈장과 어른들께 공손하게 인사하고 있다. /논산=연합뉴스

대구 강동중학교에 마련된 안심3·4동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이 계명대 음대 학생들이 연주하는 현악 4중주를 감상하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풀 뿌리 지역일꾼'을 뽑는 제4기 전국동시 지방선거투표가 31일 전국 1만3,106개 투표소에서 순조롭게 진행됐다. 유권자들은 투표가 시작된 오전6시부터 지정된 투표소를 찾아 내 고장 일꾼을 뽑기 위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정보부족과 무관심으로 사상 최악의 투표율을 보일 것이라는 선거전의 우려와는 달리 이날 투표소에는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이 적지 않았고 올해 첫 유권자로 데뷔한 만19세 젊은이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바뀐 선거제도와 복잡한 투표 방식에 실수를 하거나 불만을 터뜨리는 유권자들도 많아 향후 선거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 5ㆍ31 지방선거에서 최초로 선거권을 행사하게 된 인천지역 화교들은 "1882년 제물포에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이래 120여년만의 최대 경사"라며 선거권 취득을 자축하는 현수막을 중구 차이나타운 곳곳에 내걸었다. 중국음식점 '아방성'을 운영하는 필감미(24ㆍ여ㆍ화교3세)씨는 "할아버지 때부터의 숙원이 풀려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화교상인연합회의 범연강 회장은 "오늘은 한 세기 동안의 설움이 싹 씻어지는 날이 될 것"이라며 "첫 권리 행사인 만큼 제대로 된 지역의 일꾼을 뽑겠다"고 기뻐했다. 인천시 중구선관위는 관내 화교들을 위해 북성동 제1투표소에 중국어 통역자를 배치했으며 선거홍보 안내책자의 후보자 이름에 한글과 한자를 병기했다. 한편 인천지역 화교 1,150명 가운데 차이나타운이 위치한 중구에 거주하며 투표권을 가진 화교는 모두 510명이다. ○…5ㆍ31 지방선거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인 건평(64)씨가 선거권이 없어 투표를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김해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건평씨는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건 등과 관련해 법원이 선고한 집행유예형이 아직 끝나지 않아 투표권이 제한됐다. 건평씨는 2004년 7월21일 남 전 대우건설 사장의 요청을 받은 J리츠 대표 박모씨로부터 남 사장 연임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고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은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 받았으며 7일간의 항소기간에 항소를 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외국인들도 처음으로 주어진 참정권 행사를 위해 아침 일찍부터 투표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31일 광주에서 첫 투표를 하는 외국인은 모두 102명. 이들은 각 지역에 위치한 투표소나 동구 계림동 화교소학교에 모여 처음 주어진 참정권을 행사했다. 렁챵쥰(36.冷長俊)씨는 “한국에서 하는 첫 투표라 그런지 설레지만 진정한 지역 살림꾼을 뽑기 위해 많은 고민 끝에 투표를 마쳤다”고 말했다. ○…경남 양산시 선거관리위원회가 휴대전화 카메라(카메라폰)로 기표용지를 촬영해 후보 관계자에게 보여주면 사례한다는 제보가 접수돼 긴장. 양산시 선관위는 31일 오전 일부 유권자들이 휴대전화를 이용한 이 같은 '선(先)투표-후(後)사례' 행위를 한다는 제보가 들어와 모든 투표소 선거사무종사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일부 선거운동원들이 투표하러 가는 유권자에게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기표한 용지를 휴대전화로 촬영해 보여주면 사례하기로 했다는 제보가 있었으나 아직 적발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3명을 뽑는 선거에 22명이 출마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강원 영월군의원 가선거구에서는 혼선이 빚어질지 모른다는 우려와 달리 순조롭게 투표가 진행됐다. 영월읍 하송리 정모(74)씨는 "투표용지의 글씨가 작아 도장 찍을 후보자를 찾는데 조금 힘들었지만 마음먹은 대로 지지후보 모두에게 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영월선거관리위원회도 높은 경쟁률에다 고령 유권자가 많은 영월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해 투표구마다 배치된 대학생 자원봉사 도우미들에게 철저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당부했다. ○…오전6시40분께 김해시 진영읍 제2투표소인 대흥초등학교에서 한 40대 유권자(인적 공개 거부)가 김해시장과 시의원ㆍ시의회 비례대표 투표만하고 곧바로 이어진 경남도지사ㆍ도의원ㆍ도의회 비례대표 투표에 대해서는 용지 수령 자체를 거부해 눈길을 끌었다. 선거사무원들은 "투표 용지를 받으라고 독촉했으나 '광역선거구 후보들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그냥 갔다"고 전했다. ○…구의원 후보로 출마한 아버지에게 제일 먼저 투표하기 위해 여대생이 새벽부터 기다린 끝에 목표를 이루었다. 31일 오전5시20분, 부산 해운대구 중동 주민자치센터에 마련된 중1동 제1투표구 투표소. 박나비(19ㆍ여)양은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새벽부터 투표소 앞에서 홀로 줄을 서 투표 시작 시간인 오전6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올해 만 19세6개월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 박양은 "주변에서 제일 먼저 표를 받는 후보자가 당선된다고 말해 아버지가 구의원에 꼭 당선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새벽부터 나와 제일 먼저 아버지에게 한 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지방선거가 실시된 3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20개 투표구에서는 앞으로 도입될 터치스크린을 이용한 모의투표가 함께 진행돼 투표소를 찾은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투표를 마치고 모의투표를 체험한 권모(37ㆍ여ㆍ성남시 분당동)씨는 "이르면 올 하반기 재ㆍ보궐선거부터 도입된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 투표를 했는데 은행현금인출기를 이용하는 것처럼 간편했다"고 말했다. 중장년층들은 대체로 "처음이라 생소하긴 해도 간편해 좋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노년층들은 "투표기에 카드를 투입하는 것이 번거롭고 화면 글씨가 너무 작다"며 불편을 호소하기도 했다. ○…대구지역 최고령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31일 오전 가족들과 투표소를 찾아 한 표를 행사했다. 올해 108세로 대구 최고령 할아버지인 석판수(대구시 서구 평리3동)옹은 31일 오전10시께 아들(71)과 손자(46)의 부축을 받아 대구시 서구 평리중학교에 마련된 평리3동 제1투표소에서 투표를 했다. 회색 양복에 중절모를 쓰고 투표소를 찾은 석옹은 그간 한 번도 투표에 불참한 적이 없으며 이날도 투표하러 가자며 아침부터 채비를 서둘렀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투표를 마친 석옹은 "누가 될진 모르겠지만 누구든지 좋은 사람이 돼야 할 텐데…"라며 소감을 밝혔다. ○…경남지역에서 단독 또는 한 정당이 입후보한 광역의원과 비례대표 기초의원 후보 등 6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31일 경남도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진주시 제2선거구와 하동군 제2선거구에 혼자 등록한 한나라당 최진덕(49ㆍ도의원) 후보와 박영일(51ㆍ도의원)후보가 투표 없이 당선됐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비례대표 기초의원 후보들의 당선도 잇따랐다. 비례대표 1명을 뽑는 함안군에서 한나라당 탁옥순(53ㆍ주부) 후보가 단독 입후보해 투표의 득표율에 관계없이 당선됐다. 산청과 거창군에서도 한나라당 권민수(64ㆍ여ㆍ삼성생명 설계사) 후보와 강평자(61ㆍ주부) 후보가 투표에 상관없이 군의원에 입성하게 됐다. ○…경북 성주군에는 상주(喪主)들이 잇따라 투표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28일 부친상을 당한 성주군 선남면 유성용(45)씨 부부는 31일 오전 선남초등학교 1투표소에서 소중한 주권행사를 한 뒤 장지로 떠났다. 또 29일 부친 장례를 치른 용암면 김진담(57)씨는 삼우제 기간인 이날 오전 용암중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제일 먼저 투표해 귀감이 됐다. ○…을지로동 제1투표구 투표소에는 이날 오전 택배회사 직원인 조모(53)씨가 오토바이를 몰고 와 투표를 한 뒤 곧바로 투표소를 떠나는 모습이 목격됐다. 조씨는 "투표율이 낮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며 "오늘도 아침부터 근무 중이지만 잠시 시간을 내 투표를 하고 곧바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일인 이날 상당수 직장이 쉬지 않기로 해 투표를 하루 앞둔 3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는 근무때문에 투표를 할 수 없게 됐다는 유권자들의 불만이 잇따르기도 했다. ○…서울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양천구 내 20개 투표구가 '터치 스크린'을 이용한 전자 모의투표를 실시해 눈길을 끌었다. 유권자들은 대체로 생소하지만 편리하다는 반응이었다. 전자 모의투표에 참여한 한 40대 남성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에 투표용 카드를 발급 받는 절차의 번거로움이 해소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08년 총선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인 터치 스크린 투표기는 이번 선거에선 양천구를 비롯한 3개지역 50개 투표소에서 시범 가동 중이다. ○…서울시 은평구 진관외동 제1투표구가 마련된 은평웹미디어고등학교 투표소에는 뉴타운 개발로 인해 주소지를 그대로 둔 채 이사를 갔던 유권자들이 투표소를 찾아와 이 지역에서의 '마지막' 투표를 했다. 2,016명의 유권자를 둔 이 투표소는 뉴타운 개발이 진행되면서 최근 상당수 유권자가 이사를 했다. 함효경(43)씨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는데 이번 투표를 마지막으로 8월 이사를 가게 됐다"며 "여기서 항상 투표를 해 왔는데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섭섭하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사는 함이라(19)양은 이날 오전 친구들과의 약속도 미루고 구민회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함양은 "벌써 투표할 나이가 됐다는 게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며 "후보자들을 꼼꼼히 살펴봤는데 후보자들이 선거 전의 공약을 꼭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만 19세들은 신세대답게 후보자들의 공약을 인터넷을 통해 꼼꼼히 살펴본 뒤 투표에 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투표소가 마련된 양재초등학교 체육실에는 이날 오전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아들, 딸의 손을 잡고 투표소를 찾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날 두 아들의 손을 잡고 투표소를 찾은 김모(45)씨는 "아이들 교육 차원에서 투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 잠원동 제2투표구가 마련된 신동중학교 투표소에도 자녀와 함께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이 줄을 이었다. 투표소 관계자는 "아이들과 함께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이 많았는데 투표소에 갔다 온 소감을 숙제로 내도록 한 초등학교가 더러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5ㆍ31 지방선거에서는 유권자 1인이 총 6표를 행사해야 하는 데다 인주가 필요 없는 '만년 기표봉'도 등장해 노년층을 중심으로 실수가 속출했다. 아들과 함께 서울 종로구 1~4가 제2투표구 투표소를 찾은 이모(87) 할머니는 먼저 받은 종이 석장이 한 장에만 기표하라는 뜻인 줄 알고 석장 중 한 장에만 기표해 투표함에 넣고 말았다. 이 할머니는 "지지하는 당에 투표하라는 줄 알고 하나에만 찍고 나머지는 놓아둔 채 투표함에 넣었는데 너무 복잡해서 실수가 빚어졌다"고 안타까워 했다. 일부 투표소에는 유권자들이 '만년 기표봉'을 처음 접한 뒤 '인주가 왜 없느냐'고 따지는 웃지 못할 모습이 보이기도 했고 엉뚱한 투표소를 찾아와 헛걸음을 한 유권자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서울 경운학교 유치원실에 마련된 종로 제2투표구 투표소에서는 한나라당 참관인이 투표소 밖에서 동네 주민들을 안내하다 민주당 참관인이 '선거운동이 아니냐'고 항의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민주당 참관인은 "어차피 다 동네 주민이고 한나라당 참관인도 동네 통장인데 투표소 밖에서 안내를 한다는 것은 선거운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참관인은 "그냥 아는 사람들이라 인사를 한 것일 뿐이며 안내한 건 아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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