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10월 6일] 실질적인 상생 노력을

최근 액정표시장치(LCD)를 생산하는 세계적인 중견업체 태산LCD가 상반기에만 수천억원의 매출에 1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고도 잘못된 환헤지계약인 키고(KIKO)로 인해 흑자도산의 비운을 겪게 됐다. 환헤지의 전문지식도 경험도 없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은행의 권유에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었고 당하고 보니 은행 역시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니 책임질 일 없다고 한 것이다. 정부 역시 은행과 기업 간의 거래에 정부의 사장간섭이 어렵다고 한발 물러서는 사이 수많은 중소기업이 흑자도산의 칼날 같은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심지어 조성 강국 한국에서 공정의 몇 % 부족으로 중도금도 받지 못하고 은행의 대출 중단으로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중소조선업계의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기업이 망하면 은행도 망한다며 중소기업 지원 운운 하던 은행들은 다 어디에 가 있는가. 다행히 이런 중소기업의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노력과 더불어 중소기업살리기모임이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창립됐다. 상당한 국제경쟁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전문지식 부족과 경험 미숙으로 급변하는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중견기업의 파산은 우리 중소기업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한계 상황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것이다. 대기업은 나름대로 환경변화를 대비한 위기경영이 가능하고, 또한 제조원가 전가 등을 통해 위험을 분산할 수 있으나 시장경쟁에서 늘 약자로 서야 하는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요즘처럼 급변하는 환경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가장 시급한 것이 세계적인 원자재가 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라 할 것이다. 이미 아스콘업계와 주물공업협회를 중심으로 원자재가 상승으로 인한 납품가 부담이 상당한 사회적 문제로까지 제기된 바 있거니와 여야를 불문하고 한자리에 모여 중소기업을 살리고자 하는 국회의원들의 첫 모임의 주제로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를 제기한 것은 이러한 절박한 중소기업의 속내가 그대로 전달된 탓이리라. 국회를 중심으로 한 이번 창립기념토론회는 이러한 중소기업의 원자재가 급등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전개돼 예전에 비해 보다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토론의 한 축을 이루는 대기업들의 정서는 이 같은 납품가격의 상승을 원청업체가 스스로 해소할 수 없게 된다면 결국 소비자가 전가에 의한 가격인상을 초래하거나 이를 수용하기 어려울 경우 한국의 중소제조업체를 대신해 보다 싼 가격으로 납품이 가능한 외국업체로 아웃소싱할 수밖에 없다는 전략적 고려를 들어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의 시행이 불가함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비단 토론회에서 일시적으로 제기된 것이 아니라 모든 대기업들의 일반적인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시장의 약자편에 서서 형평성 있는 공정거래를 지원한다는 공정거래위원장마저 동일한 논리로 중소기업의 심각한 한계상황을 외면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대중소기업 상생을 부르짖으며 다양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련 사업을 벌이고 있는 대기업들이 다른 한편으로 중소기업을 상생의 대상이 아닌 제로-섬게임의 상대방으로 간주해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를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외국기업에 아웃소싱하겠다는 것은 한국 기업문화의 후진적인 한 면을 보여주는 가슴 아픈 현실이라 할 것이다. 토론에 앞서 국회의원 모임을 이끌어온 천정배 국회의원이나 최철국 의원은 물론 토론에 참여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공무원 역시 ‘왜 우리나라에는 도요타자동차 및 그 하청기업들과 같은 상생의 혁신적 고리가 없을까’ 하는 안타까운 기업문화를 토로한 바 있거니와 함께 성장할 대상이 아니라 이익을 갉아먹는 대상으로 중소기업들을 평가하고 있는 이 참담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한국의 300만 중소기업 중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청에 참여하는 업체는 무려 60%에 이르고 제조업체의 원가에서 에너지와 원자재가격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60%를 넘어선다는 통계숫자를 볼 때 현재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장기에 걸쳐 그 예측가능성이 어려운 원자재가격이 급변하는 환경에서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는 한계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한국의 중소기업계에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 할 것이다. 이를 특정 업체나 사업 분야에 국한해 시장기능의 왜곡으로 치부하려는 잘못된 현실인식이나, 10년 이상의 하청업체도 언제든 헌신짝처럼 버리고 외국에 글로벌 아웃소싱을 추진할 수 있다는 더 잘못된 현실적 대응은 선진 한국경제로 진입을 약속한 MB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 그동안 한국에 중소기업지원정책은 없어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형식에 그쳐 실효성 있는 정책의 부재가 문제였다고 할 것이다.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와 관련된 법제도적 정비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법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사문화(死文化)된 법제도가 현재까지의 문제였다. 표준하도급계약서나 가이드라인이 법적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유명무실한 징벌조항에 의해 생색만 낸 그런 중소기업 지원정책에 그친 것이 어디 한둘이랴. 이제라도 국회의원들이 발벗고 나서서 이같이 형식만 남은 중소기업지원정책을 대폭 수술하여 대기업이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실효성 있는 정책이 집행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아니, 그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말뿐인 대중소기업 상생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동반자로서의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대기업의 노력이 가시화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대기업 및 이들과 직접거래하고 있는 1차 하청업체만의 형식적인 협업 관계는 2, 3, 4차에 이르는 하청의 마지막 고리에 선 중소기업들에 단순히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러한 말단에 있는 중소기업들도 상생의 아름다움을 겪어볼 수 있도록 원청업체는 기업문화의 혁신을, 학계는 그런 기업들의 사례발굴을, 그리고 정치가는 그런 협업적 기업문화가 실질적인 상생의 선순환을 이어가는 실효성 있는 법제도의 뒷받침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열린 창립총회에서 많은 분들의 격려와 열정이 지속적으로 확산돼 중소기업들이 모처럼 한국 경제의 혁신적 동력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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