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대통령이 이런 정치적 난국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정적(政敵)을 포용해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마음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갈 수 있었던 리더십이었다. 그는 당내 주요 라이벌인 윌리엄 수어드를 국무장관에, 새먼 체이스를 재무장관, 에드워드 베이츠를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야당인 민주당에도 해군·우정·전쟁장관의 몫을 돌렸다.
이들은 장관 보직을 수용했음에도 정권 초기부터 링컨을 우습게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대통령과 함께 위태로운 조국을 이끌었고 암울한 시대를 헤쳐나가는 뜨거운 동지가 됐다. 링컨은 후일 기자에게 자신의 내각구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그들이 나라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을 권리가 없습니다."
인간은 흔히 어려울수록 가까운 친구나 동지들에게 집착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링컨은 거꾸로였다. 예전에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에게서 우정과 협조를 이끌어냈다. 그는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이 권력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우리 사회의 비리·부실의 결정판인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가 사회혁신과 국가개조의 뜻을 밝히고 있다. 그 안에는 물론 각종 법률과 제도의 정비가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국가개조 작업이 단순히 법률과 제도 몇 개를 고치는 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문제해결의 주역은 실무를 이끌어갈 사람이요, 행정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5월 중으로 이야기되는 정홍원 국무총리의 후임 인선 내지 개각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새로 들어설 국무총리와 내각 구성원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국가제도를 혁신해나가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띠고 있다. 당연히 박 대통령의 국무총리 인선과정도 보통 때와는 달라져야 한다. 지난 정권 때 흔히 봐온 것처럼 국면전환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공학의 시대는 막을 내린 지 오래다. 국무총리 인선과정을 혹여 잔꾀가 담긴 정치적 카드로 활용하려 든다면 어떤 시도도 국민은 꿰뚫어볼 것이다. 국민의 불만 표출을 이런 식으로 회피하는 술수는 생명력이 짧을 뿐 아니라 엄청난 후유증을 낳을 수밖에 없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정국 상황일수록 지도자 스스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정치적 도량과 배짱이 필요하다. 나를 버리고 대국(大局)을 선택해야만 눈 안의 비늘이 걷히고 새로운 경지의 정치상황이 시야에 들어올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지도자의 진실이 국민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이 권력의 시작임을 새삼 강조하고자 한다. 국가개조와 국민의식 변화는 국가의 모든 구성원이 수긍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때만 비로소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회에 후임 총리 임명을 놓고 박 대통령이 직접 야당과 협의하고 합의를 이끌어낼 것을 제안한다. 총리 지명이 대통령 고유의 인사권임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번 총리 인선을 사분오열이 우려되는 국론을 재결집하는 중요한 계기로 만들자는 의도일 뿐이다.
필요하다면 야당과의 영수회담도 못할 것이 없다. 이를 통해 각자의 총리 인선안을 놓고 며칠이 걸리더라도 논의하고 최종 합의를 이끌어내기 바란다. 여야 모두가 뜻을 함께한 총리라면 인사청문회 역시 보다 원활하게 이뤄지고 나아가 불필요한 정쟁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선택된 새로운 총리와 내각에 헌법에서 부여한 권한을 줘 국가개조 임무를 맡기는 대통령의 결단이야말로 지금의 정치적 난국을 뚫고 나갈 진정한 해법이 될 것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도 "책임행정을 못한다는 비난을 받는다면 공무원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질타하지 않았는가.
링컨은 젊은 군인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재선에 성공했다. 서부 군대에서는 무려 80%의 표를 얻었다. 군인들은 링컨을 지지할 경우 지긋지긋한 전쟁이 연장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마음을 얻은 대통령의 대의(大義)에 진심으로 찬성의 표를 던졌다. 나라의 지도자로서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하는 고민은 링컨 혼자만의 것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