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조피디의 Cinessay] '우리 생애 최고의 해'

'전쟁 영웅' 이면에 자리한 현실


어렸을 때, 동네에는 무서운 상이군인 아저씨들이 있었다. 아저씨들은 대부분 몸이 불편했고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화난 표정으로 대문을 목발로 쾅쾅 두드리며 무엇인가를 요구하거나 거칠게 행동했기 때문에 그냥 싫기만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다보니 무섭기만 했던 그 아저씨들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무엇이 그들을 공포스런 존재로 만들었을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게 된다. 우리 눈에는 '아저씨'였지만, 사실 그들은 20대 꽃다운 청춘이었다. 그들도 전쟁을 겪기 전엔 연인과 알콩달콩 사랑도 나누었을 것이고 인생에 대한 꿈도 찬란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전쟁에 나가라고 하니 나갔을 것이고 두려움 속에서 전진했을 것이고 어느날 장애인이 된 그 기막힌 절망과 분노를 과연 우리 사회는 보듬어주고 이해해주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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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전쟁에도 승자는 없다. 국가나 정치인은 승자가 될 수 있겠지만, 개인에게 전쟁은 폭력일 뿐이다. 1946년작 '우리 생애 최고의 해'는 바로 이런 무거운 주제를 담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알, 프레드, 호머, 세 남자의 사회 적응과정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특히 전쟁 영웅인 프레드가 현실에서는 가장 실패하는데 그에게는 알과 호머에게는 있는 중요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사랑'과 '가족'이다. 든든한 직장과 심지 굳은 아내가 있는 알, 팔 하나를 잃었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기다리고 있는 호머. 그들은 힘겹지만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상처를 치유해가지만 프레드의 아내는 방탕한 생활을 계속 하고 결국 가정이 깨지고 만다. 프레드는 착하고 지혜로운 알의 딸 페기를 사랑하게 되지만 초라한 자신의 현실 때문에 다가갈 수 없다. 알 역시 프레드에게 딸과 만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런데 왜 영화제목이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따뜻하고도 희망적인 제목일까. 아마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프레드를 위한, 프레드로 상징되는 많은 참전 군인들에 대한 위로와 응원을 담은 감독의 선물 아닐까 싶다. '로마의 휴일' '빅컨츄리' '벤허' 등 어려서부터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를 많이 봤지만 나는 이 영화가 가장 감동적이었고 특히 마지막 장면, 프레드와 페기 부녀가 재회하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눈가가 뜨거워진다.

조휴정 KBS PD(KBS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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