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글로벌 소재강국 되려면

‘미투(me too) 상품’이라는 용어가 있다. 1위 브랜드나 경쟁관계에 있는 브랜드의 인기에 편승해 자사제품을 판매할 목적으로 만든 상품을 말한다. ‘미투상품’ 전략은 시장 독점을 막고 소비자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인정받기도 하나 연구개발비의 투입 없이 선발업체가 구축한 시장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비도덕적이라 비난받기도 한다. 사실상 한국의 제조업은 ‘미투상품’의 확대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선진국 따라잡기’ 전략을 통해 지금까지 급성장할 수 있었다. 선진국이 먼저 개발한 분야에 뛰어들어 성능 개선, 디자인 차별화, 저렴한 인건비 등을 무기로 해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을 써왔던 것이다. 이 전략 자체의 정당성 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를 통해 한국 경제가 빠른 발전을 해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안전하게 작동해왔던 법칙이 통하지 않는 분야가 있으니 이것이 곧 소재 산업이다. 원천기술이 필요한 첨단 소재에는 높은 진입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에 후발업체가 따라잡기 쉽지 않아 해당 소재 생산 기업은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일단 첨단 소재 개발에 성공하기만 하면 파급효과는 크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고 개발에 이르는 시간, 비용의 투자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민간에만 맡겨두면 시장실패(Market failure)가 일어나기 쉬운 분야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재산업의 특성에 착안, 전 세계는 이미 소재와 관련한 정부 정책을 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80년대부터 리스크가 큰 신소재 연구개발을 중점 지원하고 있으며 그 결과 디지털 가전 세계 시장에서 일본의 점유율은 25%이지만 관련 소재와 제조장비에서는 각각 66%, 49%를 점유하고 있다. 독일 역시 신소재의 기초부터 상품화에 이르는 과정을 전주기적으로 지원하는 윙(WING)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은 91년에 ‘신소재 제조공정 및 상용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신소재 연구개발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부품소재’ 발전을 주요 국정과제로 정하고 최근 5~6년간 집중적인 지원을 하고 있으나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는 부품 산업과는 달리 소재 산업의 발전 속도는 더디다. 2006년 소재의 무역흑자 규모는 58억달러로 부품 산업 대비 20%도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대일 소재적자는 2006년 무려 93억달러에 달하고 규모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7월19일 국무총리 주재 ‘부품소재발전위원회’에서 소재 산업 발전비전 및 전략을 확정해 첨단 소재 개발을 위한 각 국의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전략 안에는 ‘원천기술 확보를 통한 글로벌 소재강국 도약’이라는 비전하에 세계시장 10억불 이상 규모, 세계시장 점유율 3위 이내의 한국 브랜드 소재를 오는 2030년까지 30개 만들겠다는 청사진이 담겨 있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장기적으로 미래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첨단 신소재 원천기술 개발에 역점을 둘 계획이다. 또한 우리의 자체역량을 감안해 수입대체가 가능한 품목은 R&D를 통해 국산화를 유도하고 국내 역량이 부족한 분야는 국제기술협력 및 외국인투자유치, 선진기업과의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한 오픈소싱(Open-Sourcing) 전략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출간된 책이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소개가 되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전자재료왕국, 일본의 역습’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의 저자는 아무리 전세계가 전자산업 분야에서 각축을 벌이더라도 대다수 전자 소재를 독점 생산하는 일본이 전자산업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이라면서 “한국은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소재 분야에서 우리보다 몇 십년 먼저 출발한 일본을 따라잡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따라잡기’가 아니라 발상의 전환을 통한 ‘새로운 분야의 개척’이라면 승산이 있다. 미래는 모두에게 열려있다. 정부의 지원과 민간의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원천기술 개발에 온 힘을 쏟는다면 미래 소재 산업의 판도가 뒤바뀔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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