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월4일] 교복·두발 자유화

중ㆍ고등학생들의 환성이 터졌다. 교복ㆍ두발 자유화 때문이다. 1982년 1월4일, 문교부는 전국 중ㆍ고교에 학생들의 두발상태를 자율에 맡기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교복은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자유화하기로 일정이 잡혔다. 자유화 이후 청소년 문화가 급격히 바뀌었다. 원색의 물결이 학교를 휩쓸고 유명 메이커의 운동화가 불티나게 팔렸다. 부모의 수입이 학생들의 외양을 차이 짓는 부작용도 없지 않았지만 서슬 퍼런 5공 치하에서 ‘자율화’ 역시 획일적으로 시행됐다. ‘까까머리 남학생, 단말머리 여학생’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프로이센이 비상시 학생들을 전장으로 투입하기 위해 군복과 비슷하게 만든 데서 유래했다는 검정색 교복과 금장단추며 호크도 없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교복의 생명력은 강했다. 자유화 2~3년이 흐른 후부터 교복을 착용하고 두발을 제한하는 학교가 늘기 시작했다. 특히 ‘유명 대학에 학생들을 많이 보낸다’는 서울 강남 지역 고등학교들이 면학분위기를 들며 자유화를 폐지하자 전국의 학교가 뒤를 따랐다. 학부모들도 호응을 보냈다. 2005년 말 현재 5,044개 중ㆍ고교 중 두발 제한을 푼 학교는 513개교. 10.2%에 불과하다. 교복업자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탓인지 교육 자유화 비중은 3.5%로 더 낮다. 자유화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지만 학생들의 의식과 행동양식은 이전과 달라졌다. 자유화를 촉구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고 촛불집회까지 열어 자신들의 주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111년 전 1월, 단발령에 항거해 의병을 일으켰던 조상에 비유하면 무리일까. 공부에 짓눌린 학생들에게 교복과 두발 제한은 억압구조의 총체적인 상징이다. 자유화 논란은 새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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