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쪽방촌 사회복지사 동행취재

할머니 "밥이라도 함께" 에 "형편 뻔한데…" 발길 돌려<br>저소득층주민 등 1,400여명 혼자서 맡아<br>지체장애인 방 안 용변 모습 너무 가슴아 파


새해는 사회안전망에 구멍이 뚫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특히 전국의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은 전기가 끊겨 발생한 촛불화재나 도사견에 어린 생명을 빼앗기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이 온몸으로 지켜내고 있는 사회안전망은 올해 더욱 촘촘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들의 하루를 따라가봤다. 지난 30일 오전 8시30분, 서울 중구 회현동사무소에 들어서는 선량한 인상의 서준범(30ㆍ사진) 주임. 5년째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 계층의 살림을 돌보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회복지사이다. 당일 행사와 방문대상자 리스트를 살피는 업무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회현동에 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모두 341명(297가구). 차상위계층 147명(79가구)과 장애인(297명), 경로연금ㆍ노인교통수당 대상자(624명), 한부모 가정(17명), 결식아동(11명) 등을 더하면 그가 살펴야 하는 주민은 1,400명을 웃돈다. 서 주임은 이들의 재정상태와 건강 등을 살피면서 전ㆍ출입자 관리, 복지예산 집행, 후원자 발굴, 각종 민원해결 등의 업무를 전담한다.. 그가 이날 오전에 찾은 곳은 지난 25일 화재로 집을 잃은 봉래동 55번지 주민 8명이 임시로 묵고 있는 거처.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골목 양쪽으로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단층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화재 다음날 적십자사에서 제공한 구호물품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이웃에서 내준 거처에 불편한 점이 없는 지를 살피는 게 방문 목적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점심식사와 간단한 업무를 처리한 뒤 며칠 동안 연락이 안되는 독거노인과 지체장애인을 방문하기 위해 쪽방촌으로 나섰다. 서울역앞 대우빌딩과 연세빌딩 뒷편에 자리한 쪽방촌에는 700가구 800명이 0.5~0.8평 단칸방에 의지해 살고 있다. 살림이래야 옷가지와 TV, 가스버너, 간단한 취사도구가 전부. 두명이 마주 앉기도 갑갑한 방에서 하루 종일 지내야 하는 이들도 많다. 마침 서 주임이 방문을 열었을 때 1급 지체장애자 신모(48)씨는 플라스틱통에 용변을 보고 있었다. 이북 출신 오경옥(89) 할머니는 서 주임을 보자 “항상 고마운 마음에 밥 한끼 마주앉아 먹자니까 자꾸 거절한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성의는 고맙지만 쪽방촌 거주자의 형편을 뻔히 아는 서 주임으로서는 이들과의 한끼 식사가 어렵기만 하다. 3층 건물에 40개 쪽방을 갖춘 한 건물의 관리인은 “(서 주임은)소외받은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그의 얼굴에서 천사의 모습을 본다”고 귀띔했다. 여기저기서 환대하는 쪽방촌 사람들의 표정에서 그가 얼마나 좁은 골목과 가파른 계단을 오갔을까 짐작됐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서 주임은 업무가 집중되다 보니 인력 충원이 가장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사회복지 업무를 장기 레이스에 비유했다. 쉽게 지칠 수 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서 주임은 담배를 끊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떼쓰는 노숙자를 달래려면 담배가 대화의 중요한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새해 그의 소박한 바람은 담배 권하는 사회가 아니라 담배 끊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