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공공기관이 정치백수 처리장인가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비워뒀던 공공기관장 인사에 속도를 낼 모양이다. 한꺼번에 빈 자리를 모두 채우진 않더라도 공백을 속히 메우겠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여당 쪽에서 해괴한 소리가 들린다. 대선 승리에 기여한 공신들을 홀대한다며 공공기관 임원 자리를 내놓으라고 닦달한다는 것이다. 적당한 자리를 챙겨줘야 할 공신록을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말도 나온다.

사실이라면 낙하산 인사 근절을 선언한 박 대통령의 인사원칙을 뿌리째 흔드는 무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인사 월권이기도 하다. 대부분 백의종군을 선언했던 '대선공신'들은 명예롭게 공신으로 남아 있어야 마땅하다. 만약 사욕을 채우겠다면 정치투기꾼이자 백수나 다름없다.


혈세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은 정치권 백수 처리장이 아니다. 물론 정치인이라고 무턱대고 배척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문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문제다. 도덕성과 자질도 국민 눈높이에 맞아야 한다. 공기업 낙하산인사가 어떤 폐해를 초래했는지 우리는 똑똑히 목도해왔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기관장이 노조에 휘둘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공기업 사장이 노조와 이면계약을 맺어 과도한 복지혜택을 용인하는 도덕적 해이도 서슴지 않았다. 다수의 공공기관들이 고용세습을 단체협약에 명시한 것도 뒷거래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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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은 지금 천문학적인 빚더미에 짓눌려 있다. 정부에서도 뒤늦게 심각성을 인식하고 내년부터 공공요금 현실화를 포함해 다양한 부채관리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공공요금 인상에 앞서 국민이 납득할 만한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 없이 요금만 올린다면 국민적 저항에 맞닥뜨릴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대선 캠프에서 일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사장이나 감사에 배치하려 한다면 공공 부문 개혁은 그것으로 끝장이다. 정치권에서 내려온 낙하산 수장이 외부의 개혁요구를 막아내는 바람막이밖에 더 하겠는가. 대통령은 공공기관을 정치백수 구직통로로 활용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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