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외국의 한국평가 어떻게 볼까/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 소장(기고)

 실물경제, 증시, 외환시장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는데도 경제탑이나 재계의 경제학자들은 이를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들의 진단능력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 요약해보자. 이들은 한국경제가 경기 순환 법칙에 따라 내년도에는 호황이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 시대엔 경기순환론이 없다. WTO 이전에는 한국시장이 한국기업의 차지였다. 수요가 「유한」할 때에는 재고가 생겼고 재고가 생기는 동안은 불황기였다. 유한하기는 하지만 수요가 확보돼 있었기 때문에 경기순환 현상이 어느 정도 규칙성을 보였다.  그러나 WTO 시대에는 한국시장, 외국시장이 따로 없는 지구촌시장이다. 지구촌 수요는 사실상 「무한」 수요다. 상품만 좋고 마케팅만 좋으면 세계 어디에든 팔 수 있다. 따라서 국제경쟁력이 있는 기업에는 영원히 호황이고 그것이 없는 기업에는 영원히 불황이다. 그래서 미국에는 지난 7년간, 일본에는 지난 23년간 불황이 없었다. 왜 그렇게 명확한 논리를 인정하지 않고 U자형이니 L자형이니 하며 궁색한 설명을 하는가.  많은 경제학자들이 2002년에는 1인당 GNP(국민총생산)가 2만 달러로 상승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과거에 두 자리수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실력이라면 앞으로 5년간 최소한 6∼9%의 경제성장이 문제 없다는 논리다.  한국 기업들의 WTO 이전 저력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과 변칙경영이다. 외국 아이템에 대한 독점권을 따가지고 국제시장 가격의 2∼10배에 해당하는 가격을 받아왔다.  국제시장을 무대로 삼아온 선진국 기업들에는 DTC(Design To Cost)라는 개념이 지배해왔다. 가격은 국제시장에 의해 결정되고, 경영진은 그 가격에 맞추느라 온갖 경영혁신 노력을 경주해왔다. 제품 및 공정을 어떻게 설계하고, 경영혁신을 어떻게 주도해야 생산비를 국제 시장 가격에 맞출 수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그 반대다. 『설계는 변경할 수 없는 노터치 항목이다. 지금의 생산방식과 조직도 변경할 수 없다. 부품비, 인건비, 관리비, 준조세,정치자금 등 모든 비용을 단기에 개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한국 기업의 자세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한국 기업의 저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선진국으로부터 20달러 짜리 상품이 들어오고 있다. 기업과 정부는 변신에 너무 느리다. 한국 국민도 이제는 1백달러 짜리 한국 상품을 사주지 않는다. 우리 기업은 이제 달러는 커녕 원화마저 벌지 못하게 됐다.  외국 언론들이 한국경제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진단은 매우 정확하고 표현도 악의에 찬 것이 아니다. 나는 지난 88년 미국의 미래 연구소(Futurist Group)가 주최하는 세미나에 갔다. 몇몇 발표자들이 말했다.  『체질을 바꾸지 않는 한, 한국 경제는 10년 이내에 비관적인 조짐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논리는 간단했다. 다른 세 마리 용의 경우에는 두뇌력을 가지고 경제성장을 주도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기능공에 의한 OEM 능력을 가지고 경제성장을 주도했기 때문에 한국의 임금이 주변국들과 비슷해지게 되는 날 OEM에 의한 부가가치가 한계에 부딪치게 되고 이로서 한국 경제는 내리막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이 이러한 진단을 내릴 때 한국에서는 경제성장 지수에 도취돼 있었다. 아니 지금도 도취돼 있다. 기업의 달러 벌이 능력이 한계에 달해 있기 때문에 해마다 무역적자가 역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외환보유액은 불과 3백억 달러 미만이다. 머지않아 달러 보유액이 바닥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다. 외국에서 달러를 빌리려면 그들에게 확실한 신뢰를 줘야 한다. 그 신뢰는 바로 갚을 능력이다. 우리에게 그 능력이 있는가.  지금 은행과 대기업이 동반 자살을 하고 있으나, 주식을 팔아 5원을 모은 기업에 은행이 95원을 대출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은행은 이 어마어마한 돈을 지키기 위한 아무런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재벌들은 빌린 돈을 비자금으로 빼내갔다. 과학적 분석없이 체구만 확장했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망하지 않는다. 이 어이없는 현상에 놀라지 않을 외국인이 어디 있겠는가.  주가는 기업의 돈버는 실력이다. 돈버는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재무재표다. 그런데 그 재무제표 자료는 모두 가짜다. 세금을 포탈하고 비자금을 빼내기 위해 「가짜 회계」를 하고 있는데, 누가 그 회계자료를 믿겠는가. 이러한 관행을 바로 잡지 않으면서 누구더러 한국 증시를 믿으라고 하는가. □약력 ▲42년 강원 횡성 출생 ▲육사 ▲미해군대학원 경영학박사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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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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