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MH 화해 안팎
'왕자의 난' 8개월만 "피는 돈보다 진하다" 악수
정몽구(MK) 현대ㆍ기아자동차 회장, 정몽헌(MH)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형제간의 화해는 극적으로 이뤄졌다.
지난 15일 오후 7시. 양재동 빌딩을 나온 MK는 9시께 이근영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이 위원장은 현대건설 유동성 지원을 강조했다. 여기서 MK은 '지원불가'의 기존 입장을 '지원'으로 바꿨다. 이 위원장과 회동 후 시내 모처에서 주요 사장단과 임원들을 만난 정 회장은 지원의 불가피성을 통보하고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 시각 두 사람의 회동 사실을 안 MH측은 MK측에 연락, 16일 아침 양재동 사옥을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MK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회동시간은 오전 10시.
16일 MK는 확대간부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7시 30분부터 마지막 내부 조율에 들어갔다. 이 자리에서 법 테두리내에서의 지원을 결정했다. 그리고 MH를 기다렸다.
MH가 양재동 사옥에 도착한 시각은 약속보다 20분 늦은 10시20분.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이 동행했다. 곧 바로 21층 MK 집무실로 들어선 MH는 그동안의 상황을 설명하고,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MK는 동생의 사과를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과거는 잊자, 앞으로가 중요한 게 아니냐"고 위로했다.
지난 3월이후 소위 '왕자의 난'이후 계속된 불편한 관계가 8개월만에 풀리는 순간이었고, "남보다 못하다""소떼몰고 이산가족이 만나는 기회는 마련하면서 형제간에는 못만나느냐"는 비판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MK와 MH의 냉전이 시작된 것은 MK측이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전격 발령내면서 빚어진 인사파문. MH 진영은 이를 무효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고, 이후 양 진영은 사사건건 충돌했다.
두차례에 걸친 치열한 다툼은 '왕회장'(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나이를 입증하면서 속수무책, 확대됐다. 인사 서류에 쓰인 왕 회장의 사인을 두고 펼친 논쟁은 다툼의 극치.
두차례의 싸움을 거치면서 MH측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으나 현대투신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이런 와중에 현대차는 8월말 그룹에서 분리, 현대차 소그룹을 일구는데 성공했다. 10월에는 현대건설마저 자금난에 휩싸이면서 MH는 결국 형의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16일 아침, 두사람은 '피는 돈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카메라 후레쉬를 받았다. 하지만 그동안 흘린 '피'를 보충하는데는 꽤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임석훈기자
입력시간 2000/11/1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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